하얀 돌 위 검은 돌
나 죽을 것이다 파리에서 소나기와 함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느 날.
나 죽을 것이다 파리에서- 나 뛰지 않고-
아마도 목요일, 오늘 같은, 가을의.
목요일일 것이다, 왜냐면 오늘, 목요일,
이 시구를 끄적대다, 상박근을 무리했고,
오늘같이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몸을 돌려,
내 모든 여행으로, 나 혼자 나를 본적이.
세자르 바예호 죽었다, 그를 때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가 그들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를 마구 팼다, 막대기로 마구
밧줄로도; 그 증인들은
목요일들과 상박근 뼈들,
외로움, 비,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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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사르 아브라함 바예호 멘도사(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 1892년 3월 16일 ~ 1938년 4월 15일(향년 46세)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는 페루의 시인이다.
그는 1892년 페루 북부 라리베르타르주의 광산촌 산티아고 데 추코에서 태어났다.
인디오와 메스티소 사이에서 태어난 바예호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애환을 뼛속 깊이 지닌 채 성장했다.
10대 중반부터 일찍이 집을 떠나 공부한 그는 리마에 있는 산마르코스주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 생활로 겨우겨우 버티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바예호에게 부정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가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방학 때 고향에 갔다가,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씌게 되어 도주했지만, 결국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주변 문인들의 탄원으로 석방된 그는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바예호는 파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보내며 시인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는 등 본격적인 사회 참여를 했는데, 소련을 세 차례 방문하고 공산주의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30년 추방을 당했다.
쫓겨난 그는 스페인으로 본거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자신의 사회 참여 행보를 이어 갔다.
그는 맹목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레닌, 스탈린 등에게는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2년 뒤인 1932년, 바예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정식으로 영주권을 얻었고, 스페인 내전으로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제외한 평생을 파리에서 지냈다.
총 4권의 짧은 시집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현대시의 거장으로,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시인이자 페루의 국민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가난하고 불운한 삶에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작품 분위기가 암울한 편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만의 신조어를 만들고, 철자와 구문을 의도적으로 바꾸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을 시에 쓰는 등 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을 가지고 있다.
<시집 목록>
- 검은 전령(Los heraldos negros) (1919년)
- 트릴세(Trilce) (1922년)
-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España, Aparta de Mí Este Cáliz) (1937년)
- 인간의 노래(Poemas Humanos) (193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