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너를 데려왔다
—카람을 위해서
내 너를 데려왔다 곡식의 마을 밤의 입구까지
나는 네 미소의 황금 수수께끼 앞에 할 말이 없다.
네 얼굴에 짧은 황혼이 신 같은 변덕을 떨구었다.
표범보다 음흉한 조상 이래의 고뇌가 나를 감싸고
정신이 그것을 낮의 지평선 밖에 떨치지 못할 때
나는 빛이 숨는 언덕 정상에서 네 허리의 천과
네 나체가 태양이 지듯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영원히 밤인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길인가?
나는 대지의 어머니인 동굴의 어두움에서 울며
나는 잠들리라 내 눈물의 침묵 속에서
네 입술의 젖빛 새벽이 내 이마에 닿기까지는.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Leopold Sedar Senghor : 1906-2001)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시인이며 정치가이다.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고 세네갈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신생 독립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본명은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Leopold Sedar Senghor)이며 1906년 프랑스령 서아프리카(현재의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을 카톨릭계 신학교에서 보냈으나 20세가 되던 해 사제의 길을 버리고 수도 다카르(Dakar)시의 프랑스계 중등 교육기관(lycee)으로 진학했다.
1928년 파리로 유학을 갔으며 루이제 그랑 중등학교(Lycee Louis-le-Grand)와 소르본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정규교육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현대 회화, 조각, 음악에서 고유한 아프리카적 특징을 발견했으며, 현대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잠재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굳혔다.
1935년 아프리카인으로서는 최초로 아그레제(agrege 프랑스의 중등 교육기관과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유자격 교사)가 되어 투르(Tours)에서 프랑스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2년 뒤 파리 근교의 국립 중등학교로 전임되어 아프리카 언어와 문화를 강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징집(1939)된 셍고르는 이듬해 포로로 잡혀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으며, 그곳에서 그의 명작 시들 가운데 몇 편을 집필했다.
집단수용소에서 풀려난 직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가입했다.
전후 셍고르는 프랑스 제헌의회 의원을 역임하다가 1946년에 파리에서 개최된 프랑스 국민의회에 세네갈 대의원 2인 중 한 명의 자격으로 파견되었다.
사회주의 정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1948년에 세네갈 민주연합(Senegalese Democratic Bloc)을 설립하고, 당 후보로 또다시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951).
5년 뒤 그는 세네갈 철도 교통의 중심지인 티에(Thies) 시의 시장이 되었으며, 대의원에도 재선되었다.
셍고르가 세네갈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 무렵, 프랑스는 점차 세네갈에 자치권을 인정해주기 시작했으며, 특히 1956년 프랑스 의회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영토들에 광범위한 자치를 부여하는 구역법(區域法 loi cadre)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셍고르는 동 법안이 연방이 아닌 영토 정부를 강조함으로서, 생존력이 없는 작은 국가들이 난립하게 될 것이라 판단하고, 구역법의 효과를 무산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연방체의 설립을 위해 헌신할 일련의 정당 창설을 돕고 그 정당들을 지원했다.
셍고르의 노력으로 1950년대 말에 서아프리카의 다양한 정치 집단들이 동맹을 체결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1959년 세네갈, 말리(Mali), 베냉(Benin),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가 회원국으로 가입한 말리 연방(Mali Federatio)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말리 연방은 1960년 8월 20일 세네갈이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탈퇴함으로서 해체되었다.
독립과 동시에 셍고르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현실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1962년 정치적 조력자였던 마마도우 디아의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이후 신헌법에 따라 재선된 셍고르는, 이후 1976년까지 사회주의 정책을 목표로 정치활동을 벌였다.
또한 교육을 위한 제반 제도의 발전을 시도했고, 아프리카 고유의 문화를 계승·발전하는데 중점을 두는 동시에 경제개발에도 역점을 두었다.
특히 세네갈진보주의연맹(UPS)의 결성을 도왔는데, 이 연맹은 1976년 이후 사회당(PS)으로 불리면서 1980년대 초까지도 세네갈의 집권 여당으로 존속했다.
셍고르는 1980년 12월 31일 5번째 임기 도중에 공직에서 은퇴했고 압두 디우프가 그의 뒤를 계승했다.
셍고르는 문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흑인 아프리카 세계의 문화적 유대의 총화'라고 정의된 네그리튜드(negritude) 운동의 선구자였으며, 그의 문학 작품과 정치적 업적을 인정받아 4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의 윤리 · 정치학 협회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또한 1984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회하여 이 아카데미의 역사상 최초의 흑인 회원이 되었다.
셍고르는 정계에서 은퇴한 뒤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1988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 Ce que je crois: negritude, francite, et civilisation de l'universel (That Which I Believe: Negritude, Frenchness, and Universal Civilization)를 출간하는 등 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2001년 12월 20일 프랑스 베송(Verson)에서 사망했다.
셍고르의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애정은 그의 정치 목적의 기반이 되었으며, 세네갈이 비록 경제 · 사회적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국가로 인식되는데 기여했다.
시집으로 <그림자의 노래>(1945), <검은 희생물>(1948)>, <이디오피아 사람>(1956) 등이 있다.
(두산백과 참조)
Makambo - 제프리 오르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