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베를렌느(Paul Veraine)

높은바위 2022. 12. 30. 09:53

 

      흰 달

 

흰 달이

숲 속에서 빛난다.

가지마다

소리가 난다

나뭇잎 밑에서......

 

아, 사랑하는 사람아,

 

연못이 반사한다.

깊은 거울처럼,

바람이 우는

까만 실버들의

그림자를......

 

꿈꾸자, 이제 우리들은.

 

넓고 부드러운

고요가

달빛이 빛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는 순간.

 

 

* P. 베를렌느(Paul Veraine : 1844-1896)는 1844년 3월, 프랑스 북부 메츠(Metz)의 윤택한 가정에서 외아들로 자라났다.

 

부친의 퇴직으로 파리로 이사한 그는 파리대학 법학부를 중퇴한 후 파리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여읜 이듬해인 1866년에 <현대 고답시집:Poemes saturniens>을 발표하면서 세상엥 알려진 그는 이후 <토성인의 노래:Les Poemes Saturniens>, <화려한 연회:Les Fetes Galantes>, <다정한 노래:La Bonne Chanson> 등의 시집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당대의 중심 문학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동안 주사(酒邪)의 성벽으로 일을 그르치고 인간관계에 불화를 겪는 일이 많았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해 랭보와 논쟁을 벌인 끝에 권총을 발사한 일화는 유명한데, 그는 이 일로 교도소 생활을 보냈다.

출소 후 <말없는 연가:Romances sans Paroles>와 <예지:Sagrsse>를 출판하면서 정상생활로 돌아왔으나, 교직을 수행하다 제자와 동성애에 빠져 면직을 당했다.

그는 몰락하여 가난한 생활을 보내다가 동거생활하던 창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52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의 생애는 기행(奇行)과 비극으로 점철되었지만, 오늘날 그는 생전에 남긴 840편의 시를 통해 세기말을 대표하는 프랑스 시인으로 존중받고 있다.

 

베를렌느는 말라르메, 랭보와 함께 "상징주의 시인"으로 불리운다.

이들은 쇼펜하우어의 미학과 유사한 주제와 의지력, 숙명론, 무의식적인 힘의 개념을 공유하였으며, 성(性), 도시, 비이성적인 현상(섬망, 꿈, 마약, 술)에 관한 주제와 모호하게 중세적인 배경을 사용하였다.

베를렌느가 특징지은 바와 같이 상징주의적 시작(詩作)의 절차는 엄밀한 서술보다는 모호한 암시를 사용하고, 언어의 마력을 통하여 분위기와 느낌을 환기시키며, 소리와 운문의 억양을 반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