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랭보

높은바위 2015. 2. 3. 12:20

 

                감각

 

여름 아청빛 저녁, 보리가 쿡쿡 찔러대는

오솔길 걸어가며 잔풀을 내리밟으면,

꿈꾸던 나도 발에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내 맨머리를 씻겨 주리니.

아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래도 한없는 사랑 넋 속에 올라오리니

방랑객처럼, 내 멀리, 멀리 가리라.

계집 데리고 자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 랭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시는 16세 때의 작품이다.

1871년 돔니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온갖 감각의 깊고 제한이 없으며 더구나 논리적인 착란(錯亂)"에 의해 '미지의 것'에 도달함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썼다.

베를렌느는 이것을 보고 "오라 위대한 영혼이여, 모두가 너를 기대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모음

 

A는 흑색, E는 백색, I는 홍색, U는 녹색, O는 남색.

모음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아), 악취 냄새 나는 둘레를 소리내어 나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세트.

E(으), 그늘진 항구,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왕자, 꽃 모습의 떨림.

I(이), 주홍색,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련가.

U(우), 천체의 주기, 한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이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주름살.

O(오),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에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라빛 광선.

 

 

 

* 랭보(Arthur Rimbaud : 1854-1891)는 아르덴느의 샤를르빌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미모의 천재이며 악동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으나 방랑벽 때문에 학업을 집어 치우고 16~19세 때까지 불과 3년간의 문학생활을 통해 두 편의 시집 <취한 배>와 <지옥의 계절>로 불멸의 영예를 차지했다.

그 후 시필을 집어 던지고 베를렌느의 말대로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로 18년을 방랑하다가 병들어 마르세이유에서 죽고 말았다.

그는 가시의 세계 저 너머에 있는 심오한 우주의 신비를 발견하고, 그 섬광을 옮겨 놓을 새로운 언어를 모색함으로써 인간 능력을 넘어 선 듯싶은 완전한 계시의 표현을 창조하고, 잠재의식의 세계를 시에 도입하였다.

 

 

 

                   지옥의 계절

 

지난 날의 내 기억에 의하면, 나의 생활은 모든 마음이 활짝 열려 있고,

온갖 포도주가 넘쳐 흐르는 하나의 향연이었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미(美)를 앉혔다. 때문에 나는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정의를 향하여 무장하였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함이여,

오 증오여, 너희들에게 나는 나의 보물을 맡겨 놓았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모든 인간적인 희망을 지우기에 이르렀다.

목 매어 죽이기 위해 모든 환락을 향하여, 나는 맹수처럼 소리없이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