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가루지기'의 어원

높은바위 2022. 12. 15. 07:16

 

판소리 12마당은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가루지기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을 들기도 함) 등 12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 5마당만이 전하는데요.

 '가루지기타령(-打令)'의 원형은 전하지 않고, 판소리 창자들의 노력으로 유일한 창본인 신재효 본을 바탕으로 복원한 '변강쇠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루지기타령(-打令)'은 일명 변강쇠타령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하지요.

'가루지기'는 시체 등을 '가로로 지고(橫負) 간다'라는 뜻으로 장례와 관련이 있다고도 합니다.

 
'가루지기타령(─打令)'의 내용은 변강쇠와 옹녀는 각각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 유랑하다 개성에서 만나 당일로 혼인합니다.
둘은 살아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 강쇠는 장승을 패서 불을 땐 동티로 처참한 죽음을 당하지요.
옹녀는 강쇠의 시신(屍身)을 거두기 위하여 여러 사람을 불러 모으지만, 죽거나 시체에 달라붙어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지막으로 뎁득이가 와서 시신을 넘어뜨리고 원혼(冤魂)을 위로하는 굿을 함으로써 치상(治喪)을 완수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가루지기'라는 말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승을 베어서 땔감으로 쓰던 변강쇠가 그만 동티가 나서 죽었는데, 그의 시체를 운반하는 자마다 변을 당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뎁득이라는 자가 변강쇠의 시체를 등에 가로 졌는데 그 시체가 그만 가로로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에서 '가루지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그 첫째이고요.

둘째는 변강쇠의 짝인 옹녀는 음기가 센 여자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녀의 음문이 보통 여자들처럼 세로로 찢어지지 않고 가로로 찢어진 '가루지기'였기 때문이었다는 얘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가루지기'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음욕이 강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 쓰이고 있습니다.

 

주) 변강쇠가 콜레라로 추정되는 괴질에 걸려 죽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판소리 내용상으로 장승에게 동티가 나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변강쇠로부터 초상 살을 맞아 죽은 사람들이 보인 증세는 전형적인 콜레라 감염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 동티가 나다 : 건드려서는 안 될 땅을 파거나, 돌을 옮기거나 파내는 일을 말합니다. 오래된 나무나 신성시되는 나무를 벨 때 그것을 수호하는 지신(地神)들의 노여움을 입어 재앙을 받는다는 민속 신앙 용어로, 본래는 땅을 움직인다는 동토(動土)에서 나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