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E. 뫼리케(Eduard Friedrich Mörike)

높은바위 2022. 12. 31. 09:06

 

추억

              - K. N 에게 -

그것이 둘이 걷던 마지막이었구나.

오오 클레첸이여!

그래, 그것이 마지막이었지.

우리가 어린애처럼 기뻐한 것은.

 


비 그친 그날 우리는

눈부신 햇빛 아래

소나기 오는 넓은 거리들을  

함께 부지런히 뛰어 갔지

비를 피하려 한 우산을 쓰고.

 

몸을 바싹 붙이고 아늑하게.

마치 요정의 방안에 있는 것처럼.

음, 드디어 팔짱을 꼈었지!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둘 심장이 그리 거세게 뛰고있는데!

둘 다 그것을 느꼈지만 말하진 않았지.


그리고 각자  자기 얼굴에 피어나는 홍조를

우산에 비쳐든 햇살 탓이라 돌리면서.

아! 그때 너는 천사였다!

 

고개 수그리고 땅만 내려다 보던 너.

하얀 목덜미에 굽슬거리던 황금빛 머리칼.

 

내가 말했던가!

"아마 우리 등 뒤의 하늘엔 틀림없이 무지개가 걸려있을거야.

그리고 거기 저 창가엔 기쁨에 넘쳐

메추리가 여러 번 울었던 것도 같아 "

 


그때 함께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지.

어린시절 우리가 처음 하던 장난을.

네가 자란 고향마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기쁨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테지" 내가 네게 물었었지.

"큰 통들이 뒹굴던

이웃집 뷔트너마이스터네의 작은 뜰을.

 

일요일 오후면 거기 통안에 들어가

편안한 방처럼 즐겁게 얘기하고 책을 읽었잖아.

그 사이 일요교회학교가  끝났지.

(나는 듣는다. 우리를 둘러싼 고요속에서

그때 그 오르간 소리를)

그래, 둘이 다시 한 번 그때처럼

책을 읽을까, 꼭 통안이 아니더라도 좋아,

우리 둘다 좋아하는 로빈슨 이야기를 읽자."

 

대답 대신 넌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함께 마지막 모퉁이 길을 돌아갔지

그때 나는 네가슴에 꽂혀있는 작은 장미를

달라 하였고, 넌 수줍은 눈길로 재빨리 그꽃을 내게

내밀고 떠났다.

 

떨리는 손길로 나는 그 꽃을 입술로 가져가

두번 세번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지.

누구도 그것을 비웃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너조차도 그것을 보지 못했지.

기억해보렴, 너를 바래주어야 했던

그 낯선 집 앞에 멈춰서서

나, 너의 손을 잡았지.

 

그것이 마지막이었구나.

내가 너와 함께 걸었던, 클레첸이여! 

그래, 그것이 마지막이었지.

우리가 어린애처럼 즐거웠던 것은.

 

     Erinnerung 


                     An C. N.

Jenes war zum letztenmale,
Dass ich mit dir ging, o Claerchen!
Ja, das war das letztemal,
Dass wir uns wie Kinder freuten.

Als wir eines Tages eilig
Durch die breiten, sonnenhellen,
Regnerischen Strassen, unter
Einem Schirm geborgen, liefen;
Beide heimlich eingeschlossen
Wie in einem Feenstuebchen,
Endlich einmal Arm in Arme!

Wenig wagten wir zu reden,
Denn das Herz schlug zu gewaltig,
Beide merkten wir es schweigend,
Und ein jedes schob im stillen
Des Gesichtes gluehnde Roete
Auf den Widerschein des Schirmes.
Ach, ein Engel warst du da!
Wie du auf den Boden immer
Blicktest, und die blonden Locken
Um den hellen Nacken fielen.

"Jetzt ist wohl ein Regenbogen
Hinter uns am Himmel", sagt ich,
"Und die Wachtel dort im Fenster,
Deucht mir, schlaegt noch eins so froh!"

Und im Weitergehen dacht ich
Unsrer ersten Jugendspiele,
Dachte an dein heimatliches
Dorf und seine tausend Freuden.
- "Weisst du auch noch", frug ich dich,
"Nachbar Buettnermeisters Hoefchen,
Wo die grossen Kufen lagen,
Drin wir sonntags nach Mittag uns
Immer haeuslich niederliessen,
Plauderten, Geschichten lasen,
Waehrend drueben in der Kirche
Kinderlehre war - (ich hoere
Heute noch den Ton der Orgel
Durch die Stille ringsumher):
Sage, lesen wir nicht einmal
Wieder wie zu jenen Zeiten
- Just nicht in der Kufe, mein ich -
Den beliebten Robinson?"

Und du laecheltest und bogest
Mit mir um die letzte Ecke.
Und ich bat dich um ein Roeschen,
Das du an der Brust getragen,
Und mit scheuen Augen schnelle
Reichtest du mirs hin im Gehen:
Zitternd hob ichs an die Lippen,
Kuesst es bruenstig zwei- und dreimal;
Niemand konnte dessen spotten,
Keine Seele hats gesehen,
Und du selber sahst es nicht.

Dieses war zum letztenmale,
Dass ich mit dir ging, o Claerchen!
Ja, das war das letztemal,
Dass wir uns wie Kinder freu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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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트 프리드리히 뫼리케(Eduard Friedrich Mörike: 1804년 9월 8일 ~ 1875년 6월 4일)는 독일의 시인이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중간에 위치하며 슈바벤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친과 사별하여 수도원에 의탁되었고, 후일 신학을 배워 목사가 되었다.

그 사이 연애경험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뫼리케가 성장하여 아름다운 서정시를 썼다.

1834년 클레페르슐츠바하의 목사로서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그 후에도 사회적인 지위는 올라갔으나 시작력(詩作力)은 쇠퇴하여 만년에는 은거생활로 들어가 71세로 사망하였다.

뫼리케의 시는 연애의 괴로움이나 기쁨을 노래한 것 이외에 전원시(田園詩)·산문시 등 그 범위가 넓고 낭만주의의 민요적인 정서와 고전주의로부터 배운 형식의 입체성을 재치있게 조화시키고 있다.

소설로는 대작(大作) 《화가 놀텐》(1832)과 《프라하를 여행하는 모차르트》(1856)가 대표작인데 전자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후자에서는 빛나는 영광을 누리면서 마침내 쇠퇴의 길을 걷는 천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는 후고 볼프 등이 가곡을 작곡하는데 쓰였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작품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