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D.H.로렌스

높은바위 2015. 4. 14. 07:54

 

 

      봄날 아침

 

아아, 열려진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보라빛과 청색 사이

하늘과 꽃 사이에

참새 한 마리가 날개치고 있다.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제는 정말 봄!—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나?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지니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 생각한다—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그 얼마나 호화로운가.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 1885-1930)란 이름을 들으면 <채털리부인의 사랑>이나 <아들과 연인>의 소설을 연상하면서, 제임스 조이스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우선 소설가로서의 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시를 써서, 최초의 소설 <흰 공작>(The White Peacock, 1911년)을 간행한 지 2년 뒤에 시집 <사랑의 시 기타>(Love Poems and Others, 1913년)을 간행하였다.

그 뒤에도 소설과 평론 등 산문에 의한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계속해서 시를 썼고, 중요한 시집만도 여러 권을 출판하였다.

이 <봄날 아침>은 1917년에 간행된 <보라,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Look! We Have Come Through!)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전 해에 영국 남서쪽 끝인 콘웰에서 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