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독(毒)을 차고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마저 가 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문장 10호(1939)
* 이 시는 ꡔ문장ꡕ 10호(1939.11)에 발표되었다. 1930년 ꡔ시문학ꡕ지를 통해 순수 서정시, 유미주의 시로 출발했던 김영랑도 일본 제국주의의 발악적 탄압이 극심해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순수미만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고, 나아가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죽음에의 의지와도 같은 단단한 결의’인 ‘독’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연에서는 독을 차고 세계(현실)와 맞서 싸우겠다는 자신의 확고함과 그 강도를 보이고, 2연에서는 모든 인간사가 허무한 것이라는 벗의 의견을 보인다.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고?’는 벗의 의견에 대한 화자의 반문이다. 3연은 화자의 대답이다. ‘이리 승냥이’ 같이 덤비는 일제의 중압이 있는 극한 상황에 대한 시인의 현실 인식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결단의 의연함과 확고함을 천명한다. 이러한 결단과 의지는 허무주의와 일제의 탄압에 대한 항거인 동시에 시인 자신의 내면적 순결을 지키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