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 석 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세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세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삼천리>(1932), ꡔ촛불ꡕ (1939, 재판 1952)
1.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2.이 시는 어떤 상황을 노래한 것인지 상상하여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 봅시다.
식민지 시대에 사는 시인은 <중앙불전(中央佛專)>에 적을 두고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스님 밑에서 불전(佛典)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문학사를 자주 드나 들면서 노장철학과 타고르에 탐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흰 종이 위에 자신의 시심을 펼친 것이다.
3.이 시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전 10연으로 된 자유시. 아무런 형태도 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상당한 규칙성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의식한 자취가 있다. 전 10개 연 중에서 2행씩 1개 연으로 된 것이 7개고 나머지 3개연은 각각 3행, 5행, 6행으로 이루어졌다. 2행 1연의 형태로 된 것은 “어머니/- 알으십니까?”와 “어머니/ - ㅂ시다(-렵니까).”의 반복이고 , 나머지는 배경제시인데 각 연의 행수가 늘어날수록 배경은 점점 구체화한다.
이 시는 그의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하늘’, ‘먼 나라’를 기본 상징어로 삼아 한가롭고 깨끗한 전원세계를 그려 마음에서의 동경을 구체화한 시이다. 현실의 고통이 견디기 어렵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흔히 실재하지 않는 이상세계를 그리곤 한다.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 시인은 암울한 식민지, 그 생존과 정신의 위기에서 현실과 타협할 수도 없고, 혁명가가 되어 적극적으로 대결하지도 못하고 슬픈 현실을 뛰어 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이상향, 탈현실의 세계이다. 이것이 현실 도피냐, 아니면 소극적인 저항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시의 배경은 ‘여기’가 아닌 ‘저기’ 곧 ‘먼 나라’이다. 그 먼나라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심상으로 구체화 되어 있다. 목가적인 전원이 그 먼나라이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이상주의자 혹은 낭만주이자이다. 목가적인 이상세계에서 이 시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하면 ‘모성회귀욕(母性回歸慾)’을 보인다. 모성은 평화와 안식의 표상이다.
4.구성:(1연 -4연)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동경
(5연 -7연)순수한 삶의 동경
(8연-10연)풍요로운 삶에 대한 동경
5.이 시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시인의 어느 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머니’는 현실의 갈등을 벗어난 근원적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다. 소망과 염원의 대상이며 나아가서는 한용운의 ‘님’으로 보아도 상관없다. 또한 이 시는 일제하 암흑기의 1930년대와 1931년 3월에 여읜 그의 어머니의 표상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통합적 소산으로 볼 수 있다. 혹자에 따라서는 이 시를 현실도피의 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를 ‘상실한 모성(母性)’으로, 곧 ‘빼앗긴 조국’으로 보면 시인이 식민지 시대의 삶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6.주제: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동경.
모성회귀(母性回歸)로서의 이상향의 제시와 그 동경
7.지은이 소개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전북 부안 출생. 본명은 석정(錫正).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였으며 1931년 <시문학> 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정식 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함. 그의 시는 시어의 조탁과 참신성, 형식의 세련미 등이 특징이며 시집ꡔ촛불ꡕ을 내면서 전원적, 목가적인 시를 많이 발표하여 김동명, 김상용 등과 함께 3대 전원시인으로 불림. 그가 농촌에 주로 살면서 자연에 귀의하는 경향의 시를 쓴 것은 주로 타고르와 도연명의 영향이었음. 그후1947년 두 번째 시집ꡔ슬픈 목가ꡕ에서는 성숙한 현실의 모습읋 보이면서 내적 상실감으로 바뀌고, ꡔ빙하ꡕ, ꡔ산의 서곡ꡕ에 이르면 삶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인식, 역사의식이 나타난다. 다시 ꡔ대바람소리ꡕ에서는 초기의 서정시로 복귀한다. 주요시집에 <촛불>(1939), <슬픈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소리>(1970) 등이 있음.
8.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에 쓰인 “새빨간 능금”의 의미를 알아 봅시다.
이 시에서 능금은 일반적인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좀더 나아가면 빌헬름 텔의 능금으로서 진정한 자유로의 해방을 의미하는 소재가 된다.
9.이 시는 어떤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내용이나 표현면에서 이 시는 에이레의 시인 예이츠의 「이니스프리(in-nisfree)의 호도(湖島)」를 연상하게 한다. 경어체나 설의법 등에서는 한용운의 시, 동화적 낭만의 세계인 점에서는 인도 타고르의 시와 관계가 깊다. 또 바탕사상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영향도 이야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