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01. 자 화 상

높은바위 2005. 7. 18. 06:20
 

101. 자 화 상

 

                                   윤 동 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로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48. 유고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