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호프만시탈

높은바위 2015. 2. 23. 10:54

 

        이른 봄

 

봄바람이 달려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간다.

 

흐느껴 우는 소리 나는 곳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고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다.

 

아카시아나무를 흔들어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내몰아 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늘하게 했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여기저기 찾아다닌 것이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와도 같이

새벽놀 붉게 물든 곳을

훨훨 날아 지나온 것이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있는 방을 빠져나와

봄바람은 말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혀 끄고 온 것이다.

 

봄바람이 달려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간다.

 

벌거숭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 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오솔바람은

향긋한 냄새를 지니고

이 마을에 찾아왔다.

 

 

 

*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고, 바람 역시 싸늘하여 가로수들 역시 아직 싹이 트지 않았으나, 시인의 마음 속에는 이미 봄이 왔다.

그리고 봄과 함께 지난 날의 여러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게오르게가 신고전주의를 형성해 가고 있을 때 유태 계통의 유서있는 가정에서 출생한 호프만시탈(Hugo von Hofmannsthal : 1874-1929)은 빈에서 신낭만파의 중심이 되어 자연주의와 투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