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존 밀턴(John Milton)

높은바위 2023. 8. 25. 07:07

 

소네트 19번 / 소네트 16번, On His Blindness

 

내가 인생의 절반을 채 넘기기 전에

이 크고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시력을 잃었는지 생각할 때;

내가 나의 가장 뛰어난 재능 - 내가 죽어야 숨겨지는 - 이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비록 나는 내 인생을 잘 사용했다고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그 재능을 쓰고 싶지만, 그리하여 하나님이 돌아오셔서

내가 어떻게 인생을 소모했는지에 대해 꾸짖지 않으시도록;

내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묻는다, 어리석게,

"하나님은 시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내가 하길 원하시면서 나에게서 시력을 빼앗아가시나?"

그러나 나의 내면의 인내의 감각이, 그 나쁜 생각을 멈추기 위해, 재빨리 대답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일이나 그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누구든 하나님의 명에 가장 잘 순종하는 자가 그분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이다.

"그는 왕 같으시다. 수 천의 사람들이 그의 명령에 달린다, 

땅과 바다를 쉼 없이 가르며.

그리고 그의 명을 기다리는 자 또한 그를 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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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et 19 / Sonnet 16, On His Blindness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Doth God exact day-labour, light denied?”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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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턴은 소네트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는 처음 출판 당시의 제목은 <Sonnet 16>이다. 

하지만 원래 존 밀튼이 정한 제목은 <Sonnet 19>이며, 

그래서인지 새로운 제목 <On His Blindness>를 쓰기도 한다.

 

Sonnet형식(Sonnet ; little song이라는 뜻이며, Sonnet(소네트) 특징은 14줄이다.

 

이 시는 밀턴의 자전적 시이다.

1644년 시작된 시력 문제로

1650년 왼쪽 시력을 잃고,

1652년 44세에 양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1655년 6-10월 사이에 이 시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인생의 마지막 22년 동안, 다른 사람을 통해 글을 읽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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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밀턴(John Milton, 1608년 12월 9일 ~ 1674년 11월 8일)은 영국의 시인이자 청교도 사상가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올리버 크롬웰 밑에서 외교 비서관을 지내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다.

기독교 성격의 서사시인《실낙원》의 작가로 유명하다.

밀턴은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고난과 인생 역경을 극복한 인생 자체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밀턴은 런던에서 청교도 신앙을 가진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학문과 문학에 재능과 열정을 보였으며, 열여섯 살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닐 때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용모가 고귀하였으며, 천재성을 발휘하여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을 썼다.

졸업 후 아버지의 별장에 은둔한 채 전원에서 고전·수학 등을 연구하여, 광범위한 독서와 사색으로 문학적 역량을 쌓으며 몇 편의 작품을 썼다.

 

1637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639년 귀국하여서는 국가와 교회가 일치되어 국민 특히 국교회에 반대하고 비국교회를 주장하는 청교도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혹한 형벌로 탄압하던 영국 국교회, 즉 영국 성공회에 대항하여 성서주의, 주교제 반대등이 특징인 청교도주의를 받들고 올리버 크롬웰을 지지하였다.

 

혁명이 일어난 뒤 약 10년간 외국어 장관을 지냈으며, 작은 책을 만들어 신학적, 정치적 토론을 하던 영국사회의 관습에 따라 종교·언론·정치 문제에 대한 소논문들을 집필했다.

이 시기의 주요작으로는 서양 역사에서 최초로 언론/출판의 자유를 주장한 아레오파기티카를 출판하였다.

 

아레오파기티카는 '존 밀턴의 언론 출판 자유에 대한 선언'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밀턴은 이 책에서 거짓과 진리가 열린 자유 시장에서 대결과 경쟁을 벌인다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밀턴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억압하던 자유 중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자유나 인권보다 중요한 천부적 인권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억제하는 종교야말로 악이며 거짓(비 진리)이라고 하였다.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는 인류 최초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레오파기티카는 현재 언론학자들의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