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이하(李賀)

높은바위 2015. 7. 31. 09:08

 

                  감풍(感諷)1)  가을바람에 부치는 감상

 

南山何其悲(남산하기비)               남산에 슬픈 비가 내린다.

鬼雨灑空草(귀우쇄공초)               귀신을 몰고 오는 비가 마른풀을2) 적신다.

 

長安夜半秋(장안야반추)               장안(長安)의 이 깊은 가을밤,

風前幾人老(풍전기인로)               이 바람 앞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꺼져 가는가?

 

低迷黃昏徑(저미황혼경)               낮고 어두운 황혼의 오솔길,

裊裊靑櫟道(요뇨청력도)               꼬불꼬불3) 푸른 참나무 길.

 

月午樹無影(월오수무영)               휑한 달빛에 나무는 그림자 드리우고,

一山唯白曉(일산유백효)               온 산은 하얀 새벽을 연다.

 

漆炬迎新人(칠거영신인)               옻빛4) 횃불 들어 신부를 맞이하듯,

幽壙螢擾擾(유광형요요)               깊은 묘혈(墓穴)속에 도깨비 불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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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풍(感諷) : 感이란 일반적으로 느낄 감이나, ‘한(恨)하다, 원한을 품다’ 는 뜻이 있다.

풍(諷)은 ‘고하다’라는 뜻.

따라서 직역하자면, '맺혀있는 원한을 알리는 詩' 이리 보면 될 듯싶다.

 

2) 공초(空草) : 빈 풀은 마른 풀.

 

3) 요뇨(裊裊) : 꼬불꼬불한 길을 의미.

 

4) 칠(漆) : 옻 칠, 혹은 전심할 철.

 

 

 

* 이하(李賀)는 당나라 종실(宗室)의 후예이다.

두보(杜甫)의 먼 친척이기도 하다.

창곡(昌谷)의 소지주였고, 아버지 이진숙(李晉肅)은 변경의 관리로 근무하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7살 때 문장을 지을 줄 알아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의 인정을 받았다.

 

매일 아침 말을 타고 종자를 거느린 채 등에 비단 주머니를 매게 하고, 도중에 가구(佳句)를 얻으면 주머니에 집어넣어 해질녘에 귀가하여 시를 완성했다.

작품이 항상 기궤(奇詭)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성공을 위해 목표로 삼았던 진사시(進士試)는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으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이 진숙인데 진(晉)과 진(進)은 동음이라 하여 휘를 범한다는 이의가 나와 단념했다.

이듬해 협률랑(協律郞)이란 아주 낮은 직위에 2년간 근무했다.

 

이런 요소들이 사고에 영향을 끼쳐 사상적 경향이 염세적 색채가 짙게 되었다.

기이한 시세계 때문에 시귀(詩鬼)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별칭은 북송(北宋) 시대의 수필집 『남부신서(南部新書)』와 그 밖의 책에 적혀 있다.

 

대표작은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과 「소소소(蘇小小)의 노래」 등인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장진주(將進酒)」다.

좌절된 인생에 대한 절망감을 굴절된 표현으로 노래했기 때문에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특이한 매력을 지녀 애호자도 많다.

악부사(樂府詞)도 수십 편 지었는데, 모두 음률이 붙여져 읊조려졌다.

27살 나이로 요절했다.

저서에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 4권과 『외집(外集)』 1권이 전한다.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참조)

 

이 시 <감풍(感諷)>은 이하(李賀)가 장안에 사는 동안에 쓴 작품이다.

이 詩는 그의 신괴시(神愧詩)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가 말하는 귀신은 한을 품고 죽은 여인을 말한다.

가을비 내리는 밤, 오솔길과 참나무 길에서 귀신을 회상하는 분위기를 잘 묘사한 글이다.

귀시(鬼詩)이면서 귀경(鬼景)을 나타낸 시(詩)이다.

 

시는 구조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앞 4구에서 시인은 어느 가을 날 남산(南山)에 쓸쓸한 비가 뿌리고, 깊어 가는 장안의 가을밤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뒤 6구에서는 남산에 황혼이 내리면서부터 새벽이 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 귀화(鬼火)가 어지럽게 나타나는 광경이 묘사되고 있다.

 

이하(李賀) 이전에 유귀(幽鬼), 요괴(妖怪)등의 초자연적인 사물을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으로 노래한 작품으로는 「초사(楚辭)」가 있는데 아마도 이하(李賀)는 「초사(楚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불전(佛典)」과 육조(六朝)로 부터 유행한 불교설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하(李賀)는 귀신과 신선 및 죽음을 묘사하면서, 마치 이하(李賀) 자신이 귀신을 본 듯이 서술하였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또한 시어에 있어서도 일반시인들이 쓰지 않았던 ‘귀(鬼), 로(老), 제(啼), 한(寒)’과 같은 독특한 글자를 사용하였고, 백색을 특별히 애호하여 음산함과 귀기감(鬼氣感)을 극대화시켰다.

이는 이하(李賀)만의 독특한 풍격과 창작개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이하(李賀)가 이러한 시를 남기지 않았다면, 이하(李賀)는 중국시사(中國詩史)에서 언급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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