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이상은(李商隱)

높은바위 2015. 8. 10. 07:25

 

                        곡강(曲江)1)

 

望斷平時翠輦過(망단평시취련과)             저 끝까지 바라보나 여느 때 지나던 황제의 수레는 보이지 않고,

空聞子夜鬼悲歌(공문자야귀비가)             깊은 밤 억울한 영혼의 슬픈 노래 소리만 들린다.

 

金輿不返傾城色(금여불반경성색)             금수레는 더 이상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인을 싣고 돌아오지 않는데,

玉殿猶分下苑波(옥전유분하원파)             옥전(玉殿) 어구(御溝)는2) 여전히 곡강(曲江)의 물결을 나누네.

 

死憶華亭聞唳鶴(사억화정문려학)             육기(陸機)3) 죽기 전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를 그리워하였고,

老憂王室泣銅駝(노우왕실읍동타)             색정(索靖)은 늙어 궁궐 문 앞의 동타(銅駝)를 탄식하며 울었지.4)

 

天荒地變心雖折(천황지변심수절)             하늘이 황폐하고 땅이 변하여 마음 비록 슬프지만,

若比傷春意未多(약비상춘의미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심정에 비한다면 내 마음 아무것도 아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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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강(曲江) : 당 나라 서울이었던 섬서성 서안(西安)의 동남쪽 의춘원(宜春苑)에 있는 승경지(勝景地).

 

2) 어구(御溝) : 궁궐 안의 도랑.

 

3) 육기(陸機, 260-303) : 자 사형(士衡).

오군 화정(吳郡華亭:江蘇省 吳縣) 출생.

명문 출신으로 조부 손(遜)은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재상, 아버지 항(抗)은 군사령관, 동생 운(雲)도 문재(文才)가 있어 그와 함께 ‘이륙(二陸)’이라 불리었다.

20세 때 오나라가 멸망하였기 때문에 고향에 퇴거하여 10년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 후 동생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나가 당시 지식인의 중심인물이었던 장화(張華)의 지우(知遇)를 받았고, 가밀(賈謐)과 함께 문학집단(文學集團)에 가입하여 북방문인과 교유하였다.

얼마 후, 혜제(惠帝)의 대에 이르러 정국이 혼란하고 팔왕(八王)의 난이 일어나자 이 난에 휘말려 동생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수사(修辭)에 중점을 두고 미사여구와 대구(對句)의 기교를 살려 육조시대의 화려한 시풍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문부(文賦)》는 그의 문학비평의 방법을 논한 내용으로 유명하며, 작품은 《육사형집(陸士衡集)》(10권)에 수록되어 있다.

 

4) 색정(索靖, 239-303) : 서진(西晉) 돈황(敦煌, 감숙성) 사람.

자는 유안(幼安)이다.

고향 사람 범충(氾衷)과 함께 낙양(洛陽) 태학(太學)에 들어가 ‘돈황오룡(敦煌吳龍)’이라 불렸다.

고을에 불려가 별가(別駕)가 되고, 군(郡)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되었다.

진무제(晉武帝) 때 상서랑(尙書郞)에 올랐다.

상서대(尙書臺)에 여러 해 있다가 안문태수(雁門太守)를 거쳐 노상(魯相)으로 옮기고, 다시 주천태수(酒泉太守)가 되었다.

혜제(惠帝)가 즉위하자 관내후(關內侯)에 봉작되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 낙양(洛陽) 궁성의 문에 있는 동타(銅駝)를 가리키며 “네가 풀 더미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말했다.

 

 

 

* 이상은(李商隱)은 하남성 심양(河南省 沁陽) 사람으로 25세에 영호초(令狐楚)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진사(進士)가 되고 교서랑(校書郎), 동천절도서기(東天節度書記), 검교공부낭중(檢校工部郎中) 등 높지 않은 벼슬을 역임했다.

영호초의 반대파인 왕무원(王茂元)의 사위가 되어 두 정파 사이를 내왕하여 절조를 비난받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고 수사(修辭)를 중히 여기어 정밀하고 화려하다고 하며, 전고(典故)를 많이 인용했고, 시를 지을 때는 참고 서적이 자리를 꽉 차지해 물개가 물고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당 나라 말기와 오대(五代)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고 온정균(溫庭均)과 함께 ‘溫李’로 불리웠으며 이들의 시파를 서곤체 시파(西崑體 詩派)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지냈지만, 두보(杜甫)의 전통을 이은 만당의 대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저서에 ‘의산시집(義山詩集 6권)’과 ‘서곤창수집(西崑唱酬集)’이 있다.

김광석 - 변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