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브르통

높은바위 2015. 2. 9. 17:15

 

 

                    자유 결합

 

불붙은 나뭇개비 같은 머리의 내 아내

여름의 소리없는 번개 같은 생각들 지닌

모래 시계의 동체 지닌

호랑이 이빨에 물린 수달의 동체 지닌 내 아내

리본의 꽃매듭 같은 별들의 마지막 꽃불 같은 입 가진 내 아내

눈 위의 새앙쥐 발자국 같은 이빨 가진 내 아내

호박 같은 닦은 유리 같은 혀

칼로 찌른 성체 빵 같은 혀를 가진 내 아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인형 같은 혀

믿어지지 않는 보석 같은 혀

아이의 막대기 글씨 같은 속눈썹의 내 아내

제비 보금자리의 언저리 같은 눈썹

온실 지붕의 슬레이트 같은 유리창의 김 같은 관자놀이의 내 아내

얼음장 같은 돌고래의 머리 있는 샘 같은

샴페인 아래 어깨 지닌 내 아내

성냥개비처럼 가느다란 손목의 내 아내

마음의 우연과 주사위의 그 손가락

자른 건초 같은 손가락 지닌 내 아내

담비 같고, 성 요한 축일1) 밤의

너도밤나무 열매 같은 겨드랑이

쥐똥나무 같고 조개집 같은 겨드랑이의 내 아내

바다와 수문의 물거품 같은

밀과 방앗간의 범벅 같은 두 팔

물레가락 같은 다리 가진 내 아내

시계점과 절망의 동작을 가진

말오줌나무의 속살 같은 종아리의 내 아내

열쇠 꾸러미 같은 발, 술 마시는 배의 틈막이 직공들의 발을 가진

 

찧지 않은 보리 같은 목 가진 내 아내

바로 여울 바닥에서 랑데부하는

황금 계곡 같은 목구멍을 가진 내 아내

밤 같은 젖가슴 가진

바다의 두더지 집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루비 도가니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이슬 맞은 장미꽃의 스펙트럼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펼친 부채 같은 배 가진

거인의 발톱 같은 배 가진 내 아내

수직으로 도망치는 새 같은 등 가진 내 아내

수은 같은 등

빛과 같은 등

굴러 떨어지는 돌 같고 젖은 백묵 같고

금방 마신 유리컵이 떨어지는 것 같은 목덜미 가진

곤돌라 같은 허리 가진 내 아내

샹들리에 같고 화살의 깃털 같고

흰 공작의 날갯죽지 같은

움직이지 않는 천평 같은 그 허리

사암과 석면의 엉덩이 가진 내 아내

백조의 등 같은 엉덩이의 내 아내

글라디오라스의 성기 가진

금광석과 오리너구리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태초와 옛날 봉봉과자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거울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보라빛 갑주 같은 자침 같은 그 눈

사바나2) 같은 눈 가진 내 아내

감옥에서 마실 물 같은 눈 가진 내 아내

노상 도끼 아래 있는 나무 같은 눈의 내 아내

물 공기 땅 불과 같은 높이의 눈 가진 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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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톨릭의 축일로 6월 2일.

2) 비 젖은 열대 지방에 있는 나무 없는 대초원.

 

 

 

* 브르통(André Breton : 1896-1970)은 탕쉬브레에서 출생하여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의 영향을 받고 시의 세계로 들어 갔다.

특히 폴 발레리와는 1913년 경부터 친교를 맺었다.

 

파리 대학 의학부에서 공부한 뒤 1915년에 동원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는 한편 프로이드의 저서를 탐독했고, 1916년에 낭트에서 자크 바셰를 만나 그의 영향을 받았다.

아라공, 그리고 수포와 함께 창간한 시잡지 <문학>은 1919년부터 21년에 걸친 다다이즘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1924년에 <쉬르레알리즘 제1선언>을 세상에 펴냈고, 기관지 <쉬르레알리즘 혁명>을 발간하여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2차대전 당시는 동원되었으나 그 뒤 미국에 망명하여 뉴욕에서 에른스트와 잡지 <삼중(三重)의 V>를 발행하여 쉬르레알리즘 운동을 계속하다가 1946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제2차 쉬르레알리즘 국제전을 개최하는 등 생애를 그 운동에 바쳤다.

 

이 시는 여자를 찬양하는 시인데 여체의 각각 다른 부분들이 연상되게 하는 긴 일련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한 개의 이미지 이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미지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며, 그 이미지들의 다양성 속에 온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쉬르레알리즘의 수법으로서는 자동기술법이 있는데,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 곧 <마음의 순수한 자동 현상>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브르통은 <제1선언>에서 쉬르레알리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쉬르레알리즘, 마음의 순수한 자동 현상, 그것에 의하여 필기에 의하든 또 다른 그 어떤 방법에 의하든 관계 없지만, 사고의 참다운 작용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또한 이성의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심미적이며, 또는 심리적인 배려를 완전히 떠난 사고의 구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