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높은바위 2023. 11. 5. 07:44

 

죽음이 오는 데에는

 

죽음이 오는 데에는
거의 일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그때
알몸의 손이 와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은 되돌려주었다
내 손이 잃었던 색깔을
내 손의 진짜 모습을
다가오는 매일 매달
광활한 여름의
인간들의 사건에로 업무에로

뭐가 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항상 몸을 떨고 있었던
나에게 나의 생활에
바람과 같은 커다란 목도리를 두르고
나를 가라앉히는 데는
두 개의 팔이면 족했던 것이다

그렇다 족했던 것이다
다만 하나의 몸짓만으로
잠결에 갑자기 나를 만지는

저 가벼운 동작만으로
내 어깨에 걸린 잠 속의 숨결이나
또는 한 방울의 이슬만으로

밤 속에서 하나의 이마가
내 가슴에 기대며
커다란 두 눈을 뜬다
그러면 이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한다
황금빛의 보리밭처럼

아름다운 정원의 풀 속에서
그러면 죽어 있는 것과 같았던
나의 마음은 숨을 되찾아
향긋한 향기가 감돈다
상쾌한 그림자 속에서

 

​ * * * * * * * * * * * * * *

 

*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년 10월 3일 ~ 1982년 12월 24일 향년 85세) 1897년 태어났고, 출생지는 분명치 않다.

 

부모의 비합법적 혼인 관계로 인해 외조모를 법적 어머니로 하여 외가에서 자랐다.

파리의 명문고를 거쳐 가족의 바람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으나 작가 생활을 겸하게 되면서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1920년대 ‘아름다운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기성 권위를 타파하고 현대성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려 한 초현실주의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행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이후 그는 프랑스 공산당의 문학과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1928년 가을, 그는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를 만나고, 이때 그의 처제였던 엘자 트리올레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엘자를 만나고 얼마 뒤 그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2년 뒤 그녀와 함께 소련을 방문하고, 그가 찾아 헤매던 사상을 발견한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나치의 프랑스 점령기에는 아내와 함께 레지스탕스 운동에 투신했으며, 평생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학과 현실 양면에서 격동하는 세계의 전위로서 호흡을 함께했다.

태생에 얽힌 복잡한 가정사, 청년기에 받은 폭발적인 문화운동의 세례, 참전 경험과 레지스탕스 활동, 사회주의혁명기 공산당원으로서의 삶을 모두 문학적 원료로 삼아 현실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초현실주의, 혁명과 시의 결합을 추구했다.

 

그의 시 여러 편이 샹송으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1918년 3월 시와 평론을 발표한 이래 시집 『축제의 불』 『큰 즐거움』 『비통』 『그레뱅 박물관』 『프랑스의 디아나』 『새로운 비통』 『눈과 기억』 『미완성 로망』 『엘자에 미친 남자』 『침실』 등을, 첫 소설 『아니세 또는 파노라마, 로망』을 비롯해 19세기말~20세기초 파리를 그린 ‘현실 세계’ 연작 『바젤의 종』 『아름다운 동네』 『승합차 위의 여행자들』 『오렐리앵』 『공산주의자들』과 『신성한 주간』 『죽임』 『블랑슈 또는 망각』 『앙리 마티스, 로망』 『극장/소설』 『참된 거짓말』 등의 소설을 출간했고, 문체론, 시론, 사회주의 문학론, 에세이 등 다양한 책을 썼다.

 

1936년 르노도상을, 1957년 국제 레닌 평화상을 수상했고, 1981년에는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1982년 85세의 나이로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