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사는 푸쉬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그전에 러시아에 문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문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을 따름이다.
고대문학은 주로 제사·혼례가요·민간설화·영웅전기·역사적 서사시·종교시·기도문 등이 그 내용이다.
고대문학이 문헌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의 불가리아로부터 그리스정교가 이식되어 성경과 기타 문헌들이 수입된 이후의 일이다.
<오스트로밀 복음서>는 현존하는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리스어에서 옮겨졌다.
10세기로부터 13세기까지에는 설교서·교훈서·성지여행기 등이 있는데 <네스토르 연대기>와 <이고르원정기>의 두 편은 그중 주목해야할 것들이다.
13세기 경부터는 몽고·달단이 침입하기 시작하여 바야흐로 발전도상에 오른 러시아의 문화는 좌절되었으며, 문학면에 있어서도 겨우 몇 편의 야사가 성직자에 의해서 남겨졌을 뿐이다.
15세기에 이르러 다시 문화부흥의 징조가 주로 성직자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때까지 러시아문화는 키에프시와 노브고로트시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으나, 16세기에 이르러 중심은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표드르대제 이후의 러시아문학은 그야말로 커다란 발전을 시작하였다.
칸테미르의 풍자시, 로모노소프의 작시법, 트레자곱스키의 서구문학번역 등은 이 시대에 이루어진 빛나는 업적들이다.
에카테리나 2세는 그녀 자신이 고도의 교양을 가진 문화인으로서 그녀의 보호를 받아 문학활동은 점점 왕성해져서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을 흡수한 러시아 사회에는 처음으로 소위 지식층이 생겨났다.
순문학적 작품으로서는 유럽의 의고전파의 영향을 받은 헤라스크프의 서사시 <로시아다> <블라디미르>와 데르쟈빈의 <송가> 등을 들을 수 있다.
에카테리나 시대에 뒤이어서 카람진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는 유럽 문화와 러시아 국민사상과의 융합기였다.
시인으로서 바츄쉬코프, 우화시 작가 크릴로프의 이름도 빼놓을 수가 없다.
러시아 문학이 처음으로 국민적 성격을 띠고 세계문학에 등장하게 된 것은 푸쉬킨의 공적이다.
19세기의 20년대까지의 러시아문단은 감상주의와 낭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고, 푸쉬킨 역시 청년기에는 이들의 감화를 받았었으나 후에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하여 운문소설 <예프게니 오네긴> 등을 발표하였고, 러시아말을 유럽말에 못지않게 자유롭고도 민족적 향기를 풍기게 함으로써 산문면에서도 큰 공적을 남겼다.
푸쉬킨에 의하여 개척된 사실주의는 레르몬토프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나 이 작가는 같은 낭만주의에서 출발하면서도 전자에 비하여 훨씬 주관적이며 또 반역적인 것은 그의 걸작 <현대의 영웅>에서도 볼 수가 있다.
19세기의 40~50년대는 러시아 사상계, 문학계에 있어서 극히 다채로운 시대였다.
즉 탄압정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 사상이 높아지고, 또 농노제도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져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의 대립이 각 방면에서 날카로와져갔다.
문학 방면에서는 투르게네프·곤챠로프·도스토에프스키·게르첸·드루지닌·그리고 로비치·톨스토이·비셈스키 등 다수의 재사가 배출되었고, 소위 40년대의 군성을 중심으로 눈부신 문학활동이 이루어졌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고 다음 알렉산드르 3세는 극단적 탄압정책을 가하였기 때문에 사회는 전반적으로 이상과 희망을 상실하였고, 1880년대의 문학은 반동과 환멸을 반영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사상적으로도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가 지식층의 일부에 의하여 지지를 받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보면 침체한 무풍상태였다.
1890년대에 이르면 이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는 새로 일어선 마르크스주의와 개인주의에 의하여 극복된다.
전자는 고리키를 선두로 차리코프·베레싸예프·쿠프린에 의하여 그리고 후자는 퇴폐적 상징파로서 메레즈콥스키 부부·부르소프·솔로구브 발리몬트에 의하여 각각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다.
벨르이·블로크·이바노프·고로체스키 등 젊은 시인도 상징파였다.
1890년대에서 러시아혁명(1917)까지의 말하자면 혁명전야라고도 할 이 기간은 여러 가지 의미에 있어서 혼돈된 시대였다.
안드레예프·루치나차르스키·로자노프·베르자예프 등의 신비주의 문학이 있었으며 이르츠이바세프의 호색문학과 또 부닌·자이체프 등의 사실주의 문학이 있었던 것이다.
시단에 있어서도 아크메이즘·미래파가 나타났으며, 또 노동시인들 속에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싹도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10월 혁명)에 의하여 왕정은 소비에트 정권과 교체되었다.
그리하여 전연 새로운 세계관에 입각한 소비에트문학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른다.
문학사상에서 소비에트시대는 네 단계로 나뉘어지고 있다.
제1기는 혁명에서 1921년의 신경제정책까지이며, 소위 전시공산주의시대로서 프롤레트쿨리트라는 단체가 중심이 되어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사회주의적 조직화를 목표로 삼았다.
문학면에 있어서는 처음에 시가가 일어나 코스미즘을 주장하였고, 또 혁명시도 성행하였다.
프롤레타리아파가 아닌 시인들 중에서 이미지즘을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다.
예세닌 등의 농민시도 주목해야 하겠지만, 이 시대에 문단에서 가장 활동한 작가는 루치나차르스키였다.
제2기는 1922년에서 28년까지로, 소비에트문학은 부흥기로 들어간다.
<인쇄와 혁명>, <붉은 처녀지> 등 대잡지가 발행되기 시작하여 이 잡지들을 중심으로 소비에트적 사실주의문학이 발달하였다.
특히 동반자문학이라 불리는 인텔리의 일파는 레닌그라드에서 결성된 작가단체인 세라피온 형제를 중심으로 이 새로운 시대의 표현에 분망했으며 새로운 소비에트문학에로의 교량적 역할을 했다.
그 외 세이폴리나·말르이쉬킨·바벨리·레오노프·라브레노프 등도 동반자작가였다.
1922년에는 앞에 말한 동반자의 일파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새로운 단체 오크쟈브리가 생겨 마라쉬킨·베이즈멘스키·리베진스키·소골로프 등은 기관지 <초소에서>에 의하여 무산계급 이념에 의한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확립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또 이 시기에는 개인을 어떻게 시대에 적응시킬 것인가 하는 테마를 취급한 소위 심리주의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있었다.
제3기는 유명한 제1차 5개년 계획의 개시로부터 독소전 발발까지의 시기로서 문학사상에서도 사회주의 건설기로 불리는 시기이다.
1928년에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실시한지 4년 후에는 다시 제2차 5개년 계획이 개시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프롤레타리아문학 일색으로 되어갔으며, 혁명적 낭만주의가 제창되어 많은 논의를 거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이론이 확립되었다.
1934년에는 소비에트작가동맹이 결성되었으니 1,50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전국적 통일체에 결집된 것이다.
제4기는 독소전으로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로, 소련에서는 조국 전쟁기로 불리는 시기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러하듯이 전쟁시기의 소련문학은 애국주의로 일관되어 있다.
개전과 동시에 많은 작가들이 종군하였으니, 그들은 견문 체험한 것을 종군기·보도·일기의 형식으로 지상에 발표하였다.
이것이 소위 오체르크로 전시문학의 특색이 되었다.
그 이후 진정한 소련문학은 알다시피 지하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파스테르나크·솔제니친의 비극을 새삼스레 들출 필요도 없겠다.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아름다운 미래) - 피아노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