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높은바위 2023. 4. 18. 07:13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살갗을 찌르는 꼿꼿한 밀 이삭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를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듯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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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시스 잠은 운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과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등장하는 프랑스 시인이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아이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윤동주 시인은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 씩 부를 때 가난한 이웃사람들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불렀고...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승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백석 시인은 자신과 같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태어난 것들 중 초승달, 바구지꽃과 짝새, 당나귀, 프랑시스 잠, 도연명, 라이넬 마리아 릴케를 나열했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시인 프랑시스 잠의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는 인간의 위대한 일들이 나열된다.

그 일들은 나무병에 우유를 담고 빵을 만들고 정원에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이 대단한 부와 명예와 거리가 있는 그저 가난한 이의 평범한 일상이다.

 

윤동주 시인은 아름답다 하였고, 백석 시인은 하늘이 좋아하여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태어나게 했다는 이들의 삶.

 

우리는 항상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미래를 위해 치열히 현재를 산다.

욕심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바라는 속세의 삶과 떨어져,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자신만의 고귀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그들은 아름다움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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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그의 이름은 잼스dʒɛms가 아니라 잠ʒam으로 발음됨)은 1868년 12월 2일 피레네산맥 인근의 투르네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11월 1일 바스피레네 주 아스파랑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자 비평가이다.

프랑시스 잠은 성장하며 보들레르의 시 작품에 매료되어 문학에 빠져든 것 외에 식물학과 곤충학에도 흥미를 보였다.


1888년 대학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 그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정서적 불안 상태를 겪는다.

1889년에는 소송 대리인 사무소에서 수습 생활을 하였으나 법률 공부에 싫증을 느끼고 전원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1890년 누나의 결혼 이후 어머니와 생활하며, 이해부터 강도 높은 시작(詩作)에 돌입한다.

1905년에는 시인 폴 클로델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하고, 1907년에는 지네트 고도르프(Ginette Goedorp)와 결혼한다.


1917년 프랑스 아카데미 문학 대상 수상, 1936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오말 상을 수상한다.

1922년의 레종 도뇌르 훈장 수여는 거절하였다.

 


『시편』 『시인의 탄생』 『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 『앵초(櫻草)의 비탄』 『삶의 승리』 『하늘 속의 빈터』 『기독교 농경시』 『묘비명』, 소설 『클라라 델뵈즈, 혹은 한 옛 아가씨 이야기』, 평론집 『시 강의』 등을 출간하였다.


그 외에도 평생에 걸쳐 멈춤 없는 창작 활동을 하며 당시의 프랑스 시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38년 아스파랑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