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그대를 열망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코 그대를 흡족하게 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대는 맑게 갠 빛나는 하늘이지만
나는 새장 구석에 갇힌 한 마리 새라는 것을
춥고 어두운 철창 뒤에서
놀라 애처로운 내 시선이 그대를 쫓는다
나 생각 중이다 그대가 한 손을 내밀어 줄지도 모르고
내 날개를 펼쳐 그대에게 다가갈 수도 있으리라고
나 생각 중이다 감시가 소홀한 틈에
이 침묵의 감옥으로부터 날아올라
간수 노릇하는 사람 생각하며 웃으며
그대 곁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나 이런 생각 중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결코 이 감옥에서 나갈 힘이 없다는 것을
설령 간수가 그것을 원한다 해도
나를 날게 할 숨결과 바람이 내게 없다는 것을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부신 아침
철창 뒤의 한 아기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내가 환희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기는 입맞춤으로 내 온 존재를 껴안는다
하늘이여 어느 날 내가
이 침묵의 감옥으로부터 날아가길 원할 때면
우는 아기의 눈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를 잊어라, 나는 포로가 된 한 마리 새일뿐이라 할까?
나는 포로인 새의 심장의 불로
이 폐허를 밝히는 촛불
침묵 속의 어둠을 선택하려 마음을 먹는다면
나 이 둥지를 폐허로 변하게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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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쓰일 당시의 파로흐자드의 사정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입니다.
포로인 새는 시인 자신이고 시인을 포로로 잡고 있는 '그대'는 시인의 남편입니다.
그러나 남편인 '그대가 나를 포로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를 열망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코 그대를 흡족하게 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대는 맑게 갠 빛나는 하늘이지만
나는 새장 구석에 갇힌 한 마리 새라는 것을
포로인 내가 '그대'를 안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흡족하지 않을 뿐입니다) 내가 그대를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는 맑게 갠 빛나는 하늘인데 나는 새장 속에 갇힌 한 마리 새에 불과한 것은, 그렇다면 그들 사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문제 때문입니다.
'사회'라는 개념이 나타나는 지점입니다.
내가 맞서고 있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다른 인간이 아닙니다.
'내'가 맞서는 것은 ‘사회’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사회와 맞서는 한 개인의 〈무력감〉입니다.
사회와의 관계에서의 〈무력감〉은 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 무력감은 내가 아이 앞에서 맛보는 '환희'로서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존재감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포로인 새의 심장의 불로
이 폐허를 밝히는 촛불
침묵 속의 어둠을 선택하려 마음을 먹는다면
나 이 둥지를 폐허로 변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새의 심장의 불" 정도로 내 촛불은 별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 둥지를 밝혀주는 게 바로 그 촛불입니다.
이 촛불마저 포기한다면 내 삶의 터전은 이내 폐허로 변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의 존재이유입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힌 포로이지만 '나'는 내 둥지를 지켜냅니다.
스무한 살의 시인은 사회의식에 눈 뜹니다.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사랑이면 사랑, 불륜이면 불륜, 욕망이면 욕망, 사회의식이면 사회의식, 모든 면에서 그 성숙의 속도에는 놀랍기만 합니다.
또한 시 언어를 고르고 그것을 구성해 내는 현대적인 감각에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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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열여섯 살의 파로흐자드는 열다섯 살 연상인 먼 친척 풍자만화가 셔푸르와 결혼하고 셔푸르의 직장이 있는 소도시 아흐버즈로 갑니다.
1950년대 이란은, 서구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던 시절이지만 이는 대도시에서만 통하는 일, 테헤란을 떠나 그녀가 살림을 차린 소도시 아흐버즈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히잡을 안 쓰고 짧은 치마를 입으며 파마를 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일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일을 넘어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혼 1년 후에는 아들 컴여르를 낳았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남편에게 부당한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닌데 결혼 3년 후 그들은 이혼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넓은 세계를 날고 싶은' 파로흐자드는 동시에 '상처투성이 영혼'이 됩니다.
32년의 삶 가운데 시인으로서의 삶은 1955년에서 1967년까지 12년이었습니다.
그동안 파로흐자드는 128편의 시를 썼고 이를 다섯 권의 시집으로 엮었습니다(한 권은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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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루그 파로흐자드(Forugh Farrokhzad, 1934년 12월 29일 ~ 1967년 2월 13일)는 이란의 여성 시인, 영화감독이다.
1935년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파로흐자드는 열일곱 살에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려고만 했다.
남편은 히잡을 벗고 파마를 한 그녀를 용납하지 못했고, 그는 결국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긴 채 이혼을 당한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파로흐자드는 강력한 페미니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서른두 살에 도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이란을 움직이는 강렬한 시 세계를 갖고 있다.
현대시인이자 인습 타파자로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여성적 관점에서의 글쓰기를 선보이면서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영화인으로서는 1963년 영화 《 검은 집》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영화는 이란 뉴웨이브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