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인도:타고르

높은바위 2015. 10. 8. 07:19

 

 

                     바닷가에서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은 그림처럼 고요하고, 물결은 쉴 새 없이 넘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질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바다로 떠보내는 아이,

모두들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헤엄칠 줄도 모르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진주 캐고 상인들은 배 타고 오가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질 뿐입니다.

그들은 보물에도 욕심이 없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른답니다.

 

바다는 깔깔대며 부숴지고, 암초는 흰 이를 드러 내어 웃습니다.

죽음을 지닌 파도도 자장가 부르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암초는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하늘은 폭풍 일고, 물 위에 배는 엎어지며 죽음이 배 위에 있지만,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터입니다.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īndranāth Tagore : 1861-1941)는 인도의 시성이며, 소설가로, 11세 때부터 시를 발표하여 사랑과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를 발표하였다.

그는 콜카타에서 태어났다.

벵골어로는 타쿠르(Ṭhākur)라 한다.

벵골 명문의 대성(大聖)이라 불리는 아버지 데벤드라나트의 15명의 아들 중 열넷째 아들로, 형들도 문학적 천분이 있었고, 타고르가(家)는 벵골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11세경부터 시를 썼고, 16세 때 처녀시집 <들꽃>을 내어 벵골의 P.B.셸리라 불렸다.

인도 고유의 종교와 문학적 교양을 닦고, 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며 유럽 사상과 친숙하게 되었다.

귀국 후 벵골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동시에 스스로 작품의 대부분을 영역하였고, 산문 · 희곡 · 평론 등에도 문재를 발휘하여 인도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唯美的)이었으나, 1891년 아버지의 명령으로 농촌의 소유지를 관리하면서 가난한 농민생활과 접촉하게 되어 농촌개혁에 뜻을 둠과 동시에, 작풍에 현실미를 더하게 되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을 겪고 종교적으로 되었으며, 1910년에 출판한 시집 <기탄잘리(Gī tāñ jalī)>로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세계에 알려졌다.

타고르의 시는 동양적 예지의 세계를 영적인 필법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

바라문교의 베다경에 나타난 범아 일여(우주의 중심 생명인 브라만과 개인의 중심 생명인 아트만과의 일치를 믿는 사상)를 신비주의적인 필치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에 힘썼고, 캘커타 근교에 샨티니케탄(평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벵골분할 반대투쟁 때에는 벵골 스와라지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에 국제적인 비스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국립대학이 되었다.

 

시집에 <신월(新月)(The Crecent Moon)>, <원정(園丁)(The Gardener)>(1913) 등, 희곡에 <우체국(The Post Office)>(1914), <암실의 왕(The King of the Dark Chamber)>(1914), 소설에 <고라(Gorā)>(1910), <카블에서 온 과실장수>, 평론에 <인간의 종교>, <내셔널리즘(Nationalism)>(1917) 등이 있다.

벵골 지방의 옛 민요를 바탕으로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가 작시 · 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는 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M.K.간디와 함께 국부(國父)로 존경을 받고 있다.

 

한편, 타고르는 한국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 <동방의 등불>, <패자(敗者)의 노래>를 남겼다.

<패자의 노래>는 최남선(崔南善)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이고, <동방의 등불>은 1929년 타고르가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그 대신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다.

                                                                                                          (두산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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