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조조(曹操)

높은바위 2025. 6. 2. 07:20

 

단가행(短歌行)

 

對酒當歌(대주당가) : 술을 마주하고 노래해야 하네

人生幾何(인생기하) : 인생은 얼마나 되는가

譬如朝露(비여조로) : 비유하면 아침 이슬 같은 것

去日苦多(거일고다) : 지나간 나날들 괴로움 많았다네

慨當以慷(개당이강) : 마땅히 비분강개하여

憂思難忘(우사난망) : 근심스러운 생각 잊기 어려워

何以解憂(하이해우) : 어떻게 이 근신 풀 수 있을까

唯有杜康(유유두강) : 오로지 술이 있을 뿐

青青子衿(청청자금) : 푸르고 푸른 옷깃

悠悠我心(유유아심) : 내 마음 근심스러워라

但為君故(단위군고) : 다만 임을 위한 까닭에

沈吟至今(침음지금) : 깊이 생각하며 오늘까지 왔네

呦呦鹿鳴(유유록명) : 사슴은 소리 내어 울고

食野之苹(식야지평) : 들의 풀을 먹고 있구나

我有嘉賓(아유가빈) :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어

鼓瑟吹笙(고슬취생) : 거문고 타고 생황을 불어 본다

明明如月(명명여월) : 달같이 밝고 밝아

何時可輟(하시가철) : 어느 때고 주울 수 있어도

憂從中來(우종중래) : 근심은 언제나 마음에서 나와

不可斷絕(불가단절) : 끊을 수가 없구나

越陌度阡(월맥도천) : 이리저리 논두렁 밭두렁 건너

 

枉用相存(왕용상존) : 굽히고 찾아가

契闊談讌(계활담연) : 애써서 부지런히 이야기하면

心念舊恩(심념구은) : 마음속으로 옛 은혜 생각한다오

月明星稀(월명성희) : 달은 밝고 별은 드물어

烏鵲南飛(오작남비) : 까마귀는 남으로 날아가네

繞樹三匝(요수삼잡) : 나무 둘레가 세 아름이나 되어도

何枝可依(하지가의) :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으리오

山不厭高(산불염고) : 산은 높은 것 싫어하지 않고

海不厭深(해불염심) : 바다는 깊은 것 싫어하지 않는다네

周公吐哺(주공토포) : 주공이 어진 선비 대접하여

天下歸心(천하귀심) : 천하 사람들이 마음을 돌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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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중국어: 曹操, 병음: Cáo Cāo 차오차오, 155년 ~ 220년 음력 1월 23일)는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이자 군사전략가이다.

후한이 그 힘을 잃어가던 군웅할거의 난세에 비상하고 탁월한 재능으로 두각을 드러내, 여러 제후를 연달아 격파하고 중국 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훗날 아들인 조비가 위나라를 건국할 기틀을 닦았다.

삼국시대의 영웅들 가운데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난세의 간웅(奸雄)이자,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한 인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자는 맹덕(중국어: 孟德, 병음: Mèngdé 멍더)이며, 어릴 때 이름은 길리(吉利), 소자(小字)는 아만(阿瞞)이다.

사후 위가 건국된 후 추증된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다.

위나라 역사가 배잠(裴潛)은 난세를 대표하는 창천(蒼天)의 간웅이라 평가하였다.

 

조조는 가신인 하후돈, 하후연과 함께 후한 예주 패국(沛國) 초현(譙縣) 출신이다.

중상시(中常侍, 환관의 한 직책) 조등(曹騰)의 양자인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삼국지》〈무제기〉에 따르면, 전한 시대 유방(劉邦)의 심복으로 재상을 지낸 조참(曹參)의 후손인 조등은 환제 때 중상시를 맡았다.

이에 대해 《후한서 》〈조등전〉에 조참의 후예라는 기록이 없다는 점을 들어 조참 후예설을 위의 선양을 윤색하고 조씨 가문을 격상시키려는 데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조등이 환관이라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숭을 양자로 삼았다(《삼국지》〈무제기〉에 인용된 〈조만전〉의 일설에 따르면, 조숭이 본래 하후씨이며 하후돈(夏侯惇)의 숙부라는 이야기도 있다).

 

조조는 군사, 학문, 무예, 내정 모두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 노래 등 풍류에도 매우 뛰어났다.

또한 조직을 이끄는 통솔력도 굉장했고, 무엇보다도 수하들을 장악하는 리더십의 기교에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인격 면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당시로서는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게 능력만을 가지고 인재를 선발하였다.

어떠한 분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신분이 아무리 미천하거나 과거에 자신과 악연이 있다고 해도 조조는 크게 인정해 줬다.

심지어는 아내를 고를 때도 능력을 보고 정하였는데, 최하급 신분인 기녀였던 변 씨도 능력을 인정받아 아내가 되었다.

 

또한, 조조 휘하의 많은 인물이 과거에는 조조에 대적했던 인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섭한 것은 물론 과거의 주인 아래에서 활약했을 때보다 몇 배의 활약상을 펼칠 수 있게 능력을 끌어낸 것 역시 조조의 대단한 지도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들이라면 장료와 장합이다.

 

정치적 감각 역시 뛰어나 다양한 인재와 파벌들을 교묘하게 조종해 내는 정치공학적 능력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잡아내어 최적의 결단을 내리는 시대적 선구안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초토화된 중국의 경제를 재건하고 다른 어떤 군웅들보다도 앞서 정예화된 강병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는 등 행정적인 능력 역시 후한 말 등장한 군웅 중 가장 큰 실적을 낸 만큼 행정적인 수완도 당대 일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난세의 간웅이라는 별명답게 임기응변의 대가이기도 했으며 심리전의 달인이었다.

이러한 지략은 아군을 결속시키고 사기를 높일 때도 적을 교란하고 분열시킬 때도 모두 빛을 발했다.

 

비록 천하통일을 이루진 못했지만, 고대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던 북중국을 장악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의 인구와 재화의 약 7할을 지배했다고 할 만했다.

실제로 오와 촉은 그 국력을 합쳐도 위나라만 못했고, 이러한 위나라의 우위는 삼국시대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역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