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앞을 보아도
極目觀前境(극목관전경) 눈을 들어 앞을 보아도,
寂寥無一人(적료무일인) 고요하고 쓸쓸하여 한 사람도 없고,
廻頭看後底(회두간후저) 머리 돌려 뒤를 보아도,
影亦不隨身(영역불수신) 그림자 또한 몸을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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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거사(龐居士, ? ~ 808년)는 중국 당나라 시대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 간 재가신자였다.
중국 선불교에서 거사로 최고봉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그는 많은 선화(禪話)를 남겼으며, 본래 이름은 방온(龐蘊)으로 유학자의 집에 태어난 부호였다고 한다.
그가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석두희천(石頭希遷 : 700년 ~ 790년) 선사를 만나고부터다.
방거사는 당대의 거봉인 대 선사들을 여러 사람 만났다.
마조도일(馬祖道一 : 709년 ~ 788년) 선사를 만나 선의 종지를 깨달아 마조문하에서 2년을 지냈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라는 유명한 언구(言句)를 남겨, 선가(禪家)에 널리 회자(膾炙) 되도록 했다.
백초(百草)란 온갖 풀이란 뜻으로 번뇌 망상이 일어난 것을 비유한 말이고, 바로 그 속에 조사(祖師)의 뜻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명백한 번뇌 그 속에 바로 명백한 조사의 뜻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 뒤로 다시 단하천연(丹霞天然 : 739년 ~ 824년) 선사를 만나 아주 절친한 벗이 되어 평생을 가까이하였다.
그 외에도 약산유엄(藥山惟儼), 대매법상(大梅法常) 등 여러 선사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만년에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처자식과 함께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산비탈에 밭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부인과 아들, 딸, 네 식구가 도를 통한 도인 가족이었다 한다.
특히 딸 영조(靈照)는 선기(禪機)가 민첩하여 아버지와 함께 공안을 만들어 남기는 등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 우리나라의 부설거사(浮雪居士), 중국의 방거사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거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유마경』이 나오면서 경전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이지만,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부설거사 역시 <부설전>이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실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방거사는 우적이 엮은 <방거사어록>이 남아 있고, 여러 선사들과 만나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