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재너(Oh! Susanna)
난 앨라배마에서 왔네
무릎에 밴조를 걸치고,
난 루이지애나로 가고 있네
진실한 내 연인을 만나러
내가 떠난 날 밤새도록 비가 내렸고,
날씨는 건조하였네
해는 너무나 뜨거워 난 얼어 죽을 뻔했네,
수재너, 울지 마오.
오, 수재너!
오 날 위해 울지 마오
난 앨라배마에서 왔네
무릎에 밴조를 걸치고.
그 전날 난 꿈을 꾸었네
온 사방은 고요한데
난 수재너를 보았다고 생각했네
언덕 아래로 내려오는,
그녀는 메밀 케이크를 먹고 있었고,
그녀 눈에는 눈물이 어렸네,
난 말했네, "난 남부에서 왔어" -
수재너 울지 마오.
난 곧 뉴올리언스에 도착하여
찾으러 다닐 거야,
수재너를 발견하면
땅 위에 누우리라.
하지만 그녀를 찾지 못하면
난 틀림없이 죽으리라,
내가 죽고 묻힐 때
수재너 울지 마오.
* * * * * * * * * * * * * * *
Oh! Susanna
I came from Alabama
With my banjo on my knee,
I’m going to Louisiana,
My true love for to see
It rained all night the day I left,
The weather it was dry
The sun so hot I froze to death;
Susanna, don’t you cry.
Oh, Susanna!
Oh don’t you cry for me
I've come from Alabama
With my banjo on my knee.
I had a dream the other night
When everything was still,
I thought I saw Susanna
A-coming down the hill,
The buckwheat cake was in her mouth,
A tear was in her eye,
Says I, "I'm coming from the South" -
Susanna don’t you cry.
I soon will be in New Orleans
And then I’ll look around
And when I find Susanna,
I’ll fall upon the ground
But if I do not find her,
This man will surely die
And when I’m dead and buried,
Susanna don’t you cry.
* * * * * * * * * * * * * * *
* 1848년에 발표된 스티븐 포스터의 이 노래는 미국민에게 가장 애송되는 노래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발표 이래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까지 5,000부 이상 팔린 노래 악보가 없었으나, "오! 수재너"의 악보는 1만 부 이상이 팔렸다.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 누구나 자기 이름으로 곡을 등록하고, 악보를 출간하였다.
1848년 첫 출간 후 3년 사이에 적어도 21개 이상의 다른 악보가 출간되었다.
포스터는 이 노래를 단지 100달러(현재 가치로 약 3,000달러)만 받고 출판사에 넘겼다.
하지만 이 노래의 인기가 너무 높아, 출판사는 악보 1 부당 2센트의 인세를 포스터에게 별도로 주었다.
이로 인해 포스터의 명성이 높아졌으며, 그에게 전업 작사·작곡가로서의 자신감을 주었다.
이 노래는 또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gold rush, 1848-55)로 미국 서부에서 황금 채굴의 열풍이 불던 당시 광부들에 의해 널리 불렸다.
변형된 가사 형태로 비공식 '광부의 찬가' (anthem for Forty-Niners)가 되었다.
'Forty-Niners'는 황금 채굴을 위해 몰린 1849년의 광부들을 말한다.
'수재너' (Susanna)는 그의 죽은 여동생 '샬롯' (Charlotte)의 중간 이름 '수잔나' (Susannah)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노래의 원래 가사 2절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 (nigger)가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는 대개 2절을 삭제하고 부른다.
* * * * * * * * * * * * * * *
* 스티븐 콜린스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1826년 7월 4일 ~ 1864년 1월 13일)는 미국의 가곡 작곡가, 시인이자 '미국 민요의 아버지'다.
스티븐 포스터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근교 로렌스빌에서 유복한 가정의 10남매의 막내로 출생했다.
어릴 적에 플루트를 배운 일이 있으나, 정규 음악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는 순전히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고, 18세 때 같이 노래 부르던 친구들을 위하여 최초의 가극 <루이지애나의 미녀>를 작곡했다.
1846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이사해, 형의 증기선 회사의 경리로 취직했다.
그는 이곳에서 최초의 히트작인 '오! 수재너'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의 주제가가 되었다.
1850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내과 의사의 딸인 제인 맥도웰과 결혼, 이듬해에 딸을 낳았다.
이 기간 중에 포스터는 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민스트럴 쇼의 단장 크리스티와 교제했으며, 그의 대표작들을 쓰기 시작했다.
"시골 경마" (1850), "스와니 강" (1851), "켄터키 옛집" (1853), "늙은 개 트레이" (1853), "금발의 제니" (1854) 등이다.
"금발의 제니"는 그의 아내 제인 맥도웰을 위해 쓴 작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계가 차차 악화됨에 따라 포스터는 그녀와 사이가 나빠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는 즉시 50만 부가 매진되었다고 하는 <고향 사람들>의 판권을 단돈 15달러에 양도하기도 했다.
포스터는 1860년 뉴욕 시로 홀로 이사했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운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내와도 헤어진 포스터는 빈곤 속에서, 최후의 가곡이 된 <뷰티플 드리머>를 작곡한 뒤 1864년 1월 10일 맨해튼의 한 호텔방에서 지냈다.
끈질긴 감기 때문에 침대에서 시녀를 부르려는 도중 쓰러져, 옆에 있던 세면대를 머리로 박아 세면대가 깨지고 그 조각들이 머리를 다치게 했다.
포스터를 살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그는 과다출혈로 3일 후에 38세의 나이로 벨뷰 병원에서 사망했다.
당시 그는 단 38센트와 "dear friends and gentle hearts"라고 쓰인 메모지를 가지고 있었다.
포스터는 피츠버그 근교 앨러게니(Allegheny) 묘지에 묻혔다.
가난뱅이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수입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으며, 1846년 ~ 1860년 사이에 받은 인세는 1만 5천 달러에 이르렀다.
포스터는 파멸형의 천재였던 것이다.
새가 노래하듯이 가곡을 작곡한 포스터는 선율에 대한 놀라운 직관력을 지녀, 틀에 박히지 않은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이는 진정한 민요라고 생각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작품)
포스터의 가곡수는 189곡으로 가사도 대부분이 자작한 것이다.
오! 수재너 Oh! Susanna (1848)
시골 경마 Camptown Races (1850)
스와니 강 Old Folks at Home (Swanee River)(1851)
켄터키 옛집 My Old Kentucky Home (1853)
금발의 제니 Jeannie With the Light Brown Hair (1854)
어려운 시절 다시 오지 않기를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1854)
올드 블랙 조 Old Black Joe (1860)
꿈길에서 Beautiful Dreamer (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