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ㅅ

사랑(2)

높은바위 2024. 5. 30. 07:27

 
소중히 여기어 정성을 다하는 마음. 정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러한 관계. 사랑에는 모성애, 형제애, 이성애, 종교애, 자기애, 운명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시에 있어 사랑은 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바탕으로 지고한 사랑에 대한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동인이 된다.
한편 사랑은 그 좌절로 인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움, 물질성, 구속성 등의 내적 갈등을 야기하는 삶의 감옥 또는 업(業)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우리의 꿈은
황량한 세계에 다리를 놓고
미지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어디든 간다.
가는 곳이 집이다
한나절 머리 위에 태양을 이고
발 아래 높은 산과 후미진 벌판
돌아가면 먼 마을 등불 하나 둘
웅성대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너와 나의 꿈을 눕힐
작은 창이 있고
우리의 사랑은 오늘도 황량한 세계에 다리를 놓고
미지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홍윤숙, '사랑連歌연가·2', "태양의 건너 마을", p. 84)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 '사랑', "김수영전집·1", p. 164)
 
언젠가의
당신의 입술이 주신
순수의 선물을
잊을 수 없읍니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이제 느낍니다
핑크빛 일기를 적으면서
나는
오로지 외롭습니다 (박봉우, '핑크빛 일기', "황지의 풀잎", p. 31)
 
사랑은
언제나 절벽 끝에서 완성되지만
모든 정열에는 눈이 없어서
사랑 뒤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출렁이는 푸른 숨결 속에
제 육신을 눕힌다 (이세룡, '페드라', "채플린의 마을", p. 41)
 
아담과 이브가
 
빨래줄을 매고
 
그 위에 젖은 사랑을 널고 있다 (이세룡, '情死정사', "채플린의 마을", p. 32)
 
오래 잊히움과 같은 病(병)이 있었습니다
저녁 갈매기 바닷물 휘적시운 날개처럼 피로한 날들이 비늘처럼 돋혀가도
북녘 창가에 내 알지 못할 이름의 아픔이던 것을
하루 아침 하늘 떠받고 날아가는 한쌍의 떼기러기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도 한없이 눈물 흘리고
화살을 맞은 듯 갑자기 나의 병 이름의 그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김남조, '사랑', "김남조시집", p. 31)
 
사랑하지 않으면
착한 여자가 못된다
소망하는 여자도 못된다
사랑하면
우물곁에 목말라 죽는
그녀 된다 (김남조, '사랑초서 · 1', "김남조시전집", p. 345)
 
오늘은 사랑이 내 인격이다
아니, 모든 날에
사랑이 내 인격이였다 (김남조, '사랑초서 · 9', "김남조시전집", p. 348)
 
정녕 내 사랑이면
그 영혼 안에 내 집 주시리
그 영혼의 세월 나눠 주시리
정녕
내 사랑이면 (김남조, '사랑초서 · 25', "김남조시전집", p. 353)
 
사랑은
冬天(동천)의 반달
절반의 그늘과 절반의 빛으로
얼어붙은 수정이네 (김남조, '사랑초서 · 48', "김남조시전집", p. 361)
 
사랑은
정직한 농사
이 세상 가장 깊은 데 심어
가장 늦은 날 싹을 보느니 (김남조, '사랑초서 · 81', "김남조시전집", p. 373)
 
물이어라
 
이룬 것 없는 듯
 
너를 잠기게 할 수 있고
네 속에 들 수 있는
 
죽어도 딴 마음
가질 줄 모르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머물게 하는
 
나를 잃지 않으면
너를 붙잡어 둘 수 있는
 
물이어라 (김초혜, '사랑굿· 40', "사랑굿", p. 84)
 
소리없이 와서
흔적도 없이 갔건만 남은 세월은 눈물이다
 
무쇠바퀴 돌아간
마음 뒤에
그대 감아버린 가슴은
울음으로 녹아있고
 
서로 먼 마음되어
비켜 지나도
그대 마음 넘나드는 물새가 되고
 
물과 물이 섞이듯
섞인 마음을
마음을 나눠갖지 못하면서 못하면서
하지 않은 사랑이다 (김초혜, '사랑', "사랑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