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남편의 노래
당신 속에 나는 사랑과 생명을 심었소
당신의 사랑에 답하고자 나는 피의 메아리를 연장하였고,
쟁기가 고랑 위에서 기다리듯
나는 당신의 심연에까지 갔었소.
드높은 탑, 높은 빛, 커다란 눈동자의 갈색 여인이여
나와 살을 섞은 여인, 나의 삶의 위대한 동반자여,
새끼를 밴 암사슴의 박동처럼
당신의 미친 듯한 가슴이 나에게까지 와닿는구려…
나의 분신이여, 나의 날개의 원동력이여
이 죽음 가운데에서 당신께 생명을 바치오
여인이여, 사랑하는 이여,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이 납덩이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땅 속에 묻힌 잔인한 관 위에서
아니 죽은 시체 위에서 무덤도 없이
당신을 사랑하며, 가루가 되어 죽을 때까지
온 마음 바쳐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소
전쟁터에서 당신을 기억하노라면
내 이마는 사랑의 열기로 식을 줄 몰랐고, 당신의 모습은 사라지지도 않았소
굶주린 여인처럼
삼킬 듯 내게로 다가오는 당신의 그 모습이
이곳으로 소식을 전해주오, 참호 속의 나를 느껴주오
나는 이곳에 총부리로 당신의 이름을 새기고 또 새기오
나를 기다리는 불쌍한 당신을
그리고 당신 뱃속에 있는 우리들의 생명을 지키고 있소
우리의 아이는 주먹을 꽉 쥔 채로 태어날 것이오
승리의 찬가와 기타 소리와 함께
나는 당신의 문전에 병사로서의 삶을 바친다오
미움도 증오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죽음은 불가피한 것
언젠가는 당신의 머릿결 그림자 사이에 파묻힐 날이 오겠지요
당신이 풀 먹이고 곱게 바느질한
이불속에서 잠을 청하게 되겠지.
당신의 강인한 다리는 별 어려움 없이 분만할 거요
당신의 타오르는 열정적인 입술에
너무나도 벅찬 나의 고독과 우리 사이의 이 간격을 뛰어넘어
우리는 뜨거운 입맞춤을 할 수 있겠지
나의 이 희생은 우리들의 아이의 평화를 위한 것
끝내는 무수한 시체로 가득할 저 바다 위에
당신과 나의 가슴은 빠지고
입맞춤으로 지친 여자와 남자만이 남게 되겠지.
―『민중의 바람』 중에서,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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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겔 에르난데스 길라베르트(1910년 10월 30일 ~ 1942년 3월 28일)는 27세대와 36세대에 관련된 20세기 스페인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에 저항한 시인으로서 그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알라칸테의 옥중에서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미겔 에르난데스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을 20세기의 주관성과 결합한 작품을 남겼다.
젊은 시절 염소 치기였던 그는 1936년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내란(1936-1939)에 참가했다.
내란이 끝난 후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국제적인 항의가 있자 종신형으로 감형되었으며, 얼마 후에 31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그의 시의 두드러진 주제는 사랑, 특히 슬픈 성격의 사랑과 전쟁, 죽음, 사회적 불의등이었는데, 풍부한 공고라(Gongora)풍의 양식으로 출발하여 내면적이고 단순해지다가 말년에는 비극적으로 변했다.
첫 번째 시집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달의 감식가 Perito en Lunas>(1933)이며, 대부부의 소네트가 뛰어난 고전적 순수성을 지닌 비극적이고 서정적 가락으로 구성된 시집 <끝나지 않은 번개 El rayo que no cesa> (1936)는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시집 <잠복하고 있는 사람 El hombre acecha> (1939)은 전쟁과 감옥의 공포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를 우수에 빠지게 한다.
사후에 출판된 <부재(不在)의 노래책 Cancionero y romancero de ausencias> (1958)은 그가 굶주리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감옥에서 쓴 시와 자장가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정렬과 슬픔으로 충만해 있다.
시 외에 내란 중에 선전을 위해 제작한 몇 개의 단막극이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죽음의 목자(牧者) Pastor de la muerte> (193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