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루퍼트 쇼너 브룩(Rupert Chawner Brooke)

높은바위 2024. 7. 17. 07:24

 

평화(Peace)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분의 때와 우리를 일치시켜 주시고,
우리의 젊음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를 잠에서 깨우시고,
손으로 확인하고, 맑은 눈과 날카로운 힘으로,
수영하는 사람들이 도약하는 깨끗함으로 돌이키고,
늙고 춥고 지친 세상에서 기뻐하고,
명예가 움직일 수 없는 아픈 마음을 떠나고,
그리고 반인반수(半人半人)들, 그리고 그들의 더러운 노래와 음산함,
그리고 사랑의 모든 작은 공허함!

오! 부끄러움을 알았던 우리들은 거기서 해방을 찾았고,
아픈 곳도, 슬픔도 없고, 잠은 수선하는 곳,
이 몸을 제외하고는 부서진 것이 하나도 없고, 잃은 것은 숨 외에는 없다.
웃는 마음의 긴 평화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고통만이 있을 뿐, 그것은 끝이 있다.
그리고 최악의 친구이자 적은 죽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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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Now, God be thanked Who has matched us with His hour,
   And caught our youth, and wakened us from sleeping,
With hand made sure, clear eye, and sharpened power,
   To turn, as swimmers into cleanness leaping,
Glad from a world grown old and cold and weary,
   Leave the sick hearts that honour could not move,
And half-men, and their dirty songs and dreary,
   And all the little emptiness of love!

 

Oh! we, who have known shame, we have found release there,
   Where there's no ill, no grief, but sleep has mending,
      Naught broken save this body, lost but breath;
Nothing to shake the laughing heart's long peace there
   But only agony, and that has ending;
      And the worst friend and enemy is but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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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트 쇼너 브룩 (Rupert Chawner Brooke, 1887년 8월 3일 ~ 1915년 4월 23일)은 영국의 시인이자 군인이었다.

브룩은 럭비학교(Rugby School)와 케임브리지의 킹즈 칼리지(King's College)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결실을 맺지 못한 슬픈 연애를 한 후 아픈 마음으로 유럽, 미국, 캐나다, 남지나해 등을 널리 여행하면서, 시와 수필을 썼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왕립 해군연대에 장교로 위촉되었고, 안트워프(Antwerp)로 잠시 원정을 나갔었다.

그는 1914년에 휴가를 얻어 전쟁 소네트(War Sonnets)”들을 썼고, 5개월 후 갈리폴리(Gallipoli)행의 한 수송선에서 이질과 혈독으로 사망했다.

그는 스키로스(Skyros)라는 그리스령의 한 섬에 안장되었다.

 

브룩은 종종 위대한 전쟁에 의해 박살난 자유 문화의 황금세계의 대표자로 여겨지는데 이는 상당히 정당한 것이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애국적인 영국인 한 세대 전체의 죽음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브룩은 바이런처럼 매우 잘 생겼고, 운동을 잘하며, 총명하고 재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직후에 성 베드로 성당의 수석 사제가 그 성당의 강단에서 "병사"(The Soldier)라는 시를 읽었고, 1915년에 처칠(Winston Churchill)이 쓴 고별사가 런던 타임스에 실렸다.

이 고별사는 그 후 여러 해 동안 많이 인용되었다.

 

그가 뒤에 남겨 놓은 비할 바 없이 훌륭한 몇몇 전쟁 소네트들에서 그가 표현한 사상에 이 전쟁, 즉 지금까지 인류가 싸워온 모든 전쟁 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잔인하고, 보상은 가장 없는 전쟁으로, 단호하게 결의하고 쾌활하게 나아가는 수많은 병사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 사상은 루퍼트 브룩 자신의 역사이며 계시이다.

쾌활하고 두려움을 모르고, 다재다능하며, 교육을 많이 받고, 정신과 육체의 고전적인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는 가장 고귀한 희생 이외에는 아무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가장 고귀한 희생은 가장 자유롭게 주어지는 것일 때, 영국의 모든 고귀한 자손들이 바치고자 하는 이상이었다.

 

이 고별사에 브룩의 인간적인 면과 그의 시의 특징이 잘 요약되어 있다.

1915년에 그의 “1914년과 다른 시편들(1914 and Other Poems)”이 출판되었고, 그 후 10년 동안에 이 시집과 시선집(Collelcted Poems)”3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전쟁의 두려움에 대해 시를 쓰지 않은 것에 대하여 종종 비판을 받았다.

그가 조지 왕조시대의 시인(Georgian poet)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스승이 엘리자베스 시대의 작가들, 존 단(John Donne) 및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이라고 생각했다.

 

1911년에 출판된 그의 시집(Poems)”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는데, 만일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래서 갈리폴리 해안에 상륙하여, 전투를 했더라면, 그도 서부전선의 두려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