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네끄라소프

높은바위 2015. 9. 4. 07:44

 

                  고향

 

여기에 또다시, 낯익은 여러 곳,

내 선조들의 무익하고 공허한 생활이

술판과 무의미한 오만과

더러운 방탕과 비열한 포학 사이에서 흘렀던 곳.

짓눌리며 떠는 노예 무리가

지주의 보잘것없는 수캐들의 생활을 부러워했던 곳,

내가 세상을 보도록 운명 지워졌던 곳,

참고 미워하는 것을 내가 배웠던 곳,

하지만 미워하는 것을 마음속에 부끄럽게 숨기면서,

때때로 나도 지주이기도 했던 곳.

때도 아직 덜 되어 타락한 내 넋에서

그렇게도 빨리 행복한 평온함이 날아가 버리고

어린애답지 않은 욕구와 불안의

괴로운 불길이 빨리도 심장을 불살랐던 곳,

화려하고 놀라운 날들이라는 떠들썩한 이름으로 알려진

청춘의 날들의 여러 추억이

내 가슴을 원한과 우울로 가득 채우고 나서

성장을 하고 내 앞을 지나간다.

 

여기에 어둡고 컴컴한 뜰이 있다...... 길게 뻗친 나뭇길 속의 나뭇가지 사이로

누구의 모습, 병적으로 슬픈 모습이 번뜩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 당신께서 울고 계신지, 어머님!

누가 당신의 인생을 파멸시켰는지. 오, 알고 있어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한평생 음울한 무식쟁이에게 맡겨져

덧없는 희망에 당신께서는 의지하지 않으셨나요.

운명에 거슬러 일어서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시면서도

당신께서는 자기의 운명을 노예의 침묵 속에서 견디어내셨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넋은 무감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의젓하고 의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뎌내실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당신의 임종의 속삭임은 가해자에게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도 목소리 없는 이 인고의 어머니와 함께

무서운 운명의 슬픔이나 치욕을 나누어 가졌던

너도 또한 이제 없다, 내 넋의 누이여!

농노 출신의 정부들과 사냥개지기들의 집에서

치욕에 의하여 내몰린 너는 네 운명을 맡겼다.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은 자에게......

하지만 제 어머니의 슬픈 운명을

이 세상에서 되풀이하고 난 뒤

너는 무덤 속에 누웠다.

싸늘하고 엄격한 미소를 띠고

잘못을 뉘우치고 울음을 터뜨렸던 망나니

자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을 만큼의.

여기에 잿빛의 낡은 집이 있다.

지금은 비어 있고 황량하다.

여인들도 개들도 광대들도 노예들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나는 기억하고 있다—여기서는 무엇인가가 모든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여기서는 어린애고 어른이고 슬프게 심장이 아팠었다.

나는 유모에게로 달려가곤 했다......아, 유모여! 몇 차례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었던가,

가슴이 답답할 때.

그녀의 이름을 들을 적마다 감동하여

내가 그녀에게 대하여 경건을 느낀 것이 오래 전의 일이었던가?

그녀의 무의미하고 유해한 선량함의

많지 않은 특색이 내 기억에 되살아나면

내 가슴은 새로운 적의와 증오로 가득 찬다.

아니다! 내 반역의 거친 청춘 속에는

넋에 위로가 되는 추억 따위는 없다.

그러나 초년부터 내 인생을 속박하고 나서

물리칠 수 없는 저주로 나를 내리눌렀던 모든 것,

모든 것의 근원이 여기에, 내가 태어난 고을에 있다!

둘레에 혐오의 시선을 던지면서

기쁘게 나는 본다, 베어 눕혀진 어두운 침엽수의 숲

괴로운 여름의 고열의 방패와 시원함,

그리고 밭도 불태워져 버리고 가축이 게으름 피우며 졸고 있다,

말라붙은 개천 위에 목을 늘어뜨린 채,

또 텅 빈 음산한 집이 비스듬히 쓰러져가고 있다.

거기서는 술잔 소리와 광희의 목소리에

짓눌린 고통의 메아리 없는 영원한 먼 우르렁거림이 반향하며

모든 사람들을 짓눌렀던 자 혼자만이

자유로이 숨을 쉬고 있기도 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살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 네끄라소프(Nikolai Alekseevich Nekrasov : 1821-1878)는 몰락한 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해서 일찍부터 자기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40년대 초기에는 당대의 러시아문단의 대부인 벨린스끼의 그룹에 가담하고, 처음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수완만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곧 벨린스끼에게 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게 되어 일류 시인으로서 문단에 나서게 되었다.

 

19세기 중엽의 '참회하는 귀족'의 대변자로서 문단에 나타난 그는, 인간 생활의 고뇌를 노래하면서, 자기 계급에 대한 불만과 학대받는 민중에 대한 동정심으로 넘치고 있었다.

특히 농노제도의 압제에 허덕이는 농노에 대하여 깊은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

러시아 사회에서 불행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잘 묘사하고, 지식인들로 하여금 농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호소하였다.

 

그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생활이며 미술상의 관념 같은 것은 문제로 삼지 않고, 이른바 인상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비극적인 장시 <러시아의 여인들>, 농노제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러시아에서는 누가 행복한가> 등을 위시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는 귀족적이면서도 민중의 일상어를 훌륭하게 구사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널리 일반 대중들의 애호를 받고 있다.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저 멀리 아름다운 곳) - 합창단 OST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