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
삭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또다시 서울을 떠나야했다.
그대로 앉아서는 죽을 수 없는
악몽 같은 아비귀환.
그것은 버려진 갈대밭을 휩쓰는 해일이었다.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화물차에 매달려
언 발을 동동 구르던
수천수만의 난민들.
비정의 바람벽을 넘어
보장 없는 내일을 향해 저마다 피난의 길은
멀기만 했다.
바람에 쓰러지는 눈은 내리고...
더는 걸을 수 없어 길가에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체념.
아, 무슨 죄로
이 땅에 태어나 옮겨놓은 걸음걸음마다
눈물이어야 할까.
눈 속에 묻혀있는
저 흰 고무신 한 짝
죽은 자의 것인지 산자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굶주림에 지쳐 눈길에 쓰러져있는 여인.
그녀의 등에 업혀 울부짖는
아기의 울음소리.
도로와 철로를 메운 피난민의
행렬은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가제도구를 실은 수레를 끌고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옮겨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