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포르투갈: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높은바위 2023. 2. 22. 06:18

 

            습지들*

 

  내 금빛 영혼을 갈망들로 비벼대는 습지들···

  다른 종들의 먼 종소리··· 황금색 밀밭이 창백하다

  노을의 잿더미 속에서··· 내 영혼으로 육욕의 한기(寒氣)가 흐른다

  이렇게나 한결같구나, 시간이여···! 야자수 꼭대기들에서 흔들린다···!

  잎사귀들이 응시하는 우리 안의 침묵··· 가느다란 가을

  희미한 새의 노래의··· 침체 속에, 잊힌 푸름

  아 시간 위에 발톱을 물리는 갈망의 함성은 어찌나 고요한지!

  나의 경탄은 우는 것 이외의 것을 얼마나 열망하는지!

  두 손을 저 너머로 뻗쳐보지만, 뻗치면서 난 이미 본다

  내가 욕망했던 그것이 원했던 그것은 아님을···

  불완전한 심벌즈··· 오 그토록 오래된

  시간   스스로로부터 추방하는 시간! 침범하는 후퇴의 물결

  기절할 때까지 계속되는 나 자신으로의 도피,

  그리고 현존하는 나에게 그토록 몰두하여, 마치 내가 망각된 듯···!

  있었음이 없는, 가짐이 부재한, 후광의 유체···

  신비는 다른 존재가 되는 나를 안다··· 무한 위에 월광···

  보초병은 꼿꼿하다   창은 땅에 딛고서

  그것은 그보다 더 높다··· 이 모든 게 다 뭘 위해서인가··· 평범한 하루···

 

  엉뚱한 덩굴식물들이 시간으로 저 바깥들을 핥고 있다···

  지평선들은 오류의 연쇄들인 공간으로 눈을 감는다···

  미래의 고요들의 아편 합주들··· 멀리 떨어진 기차들···

  나무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문들··· 그토록 무쇠의!

                                                                 - 1913. 3. 29. 

   * 이 시는 페소아가 창안한 문학 사조 중 하나인 '파울리즘(Paulismo)' (직역하면 '습지주의' 또는 '늪주의')의 전범이 된 시로 그가 창간한 전위 문예지 『오르페우(Orpbeu)』에 발표되었는데, 독자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의미론적인 이해보다는, 상징들의 낯선 배치와 시각적 효과에 주목하는 독해가 일반적이다.

 

 * * * * * * * * * * * * * *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 1888-1935, 47세)는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의 시인, 작가, 철학자이다.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선구자,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포르투갈어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일생 동안 70여 개의 이명(異名)을 사용하여 다양한 분야의 글을 다양한 문체로 썼다.

대표적인 이명(異名)으로는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등이 있다.

시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불안의 책(불안의 서)'이라는 작품이 그의 대표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 함께 살았던 이모 아니카(Anica)의 영향으로 점성술과 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페소아는 해독 불가한 예언들을 자동 기술 방식으로, 단상과 기호로 남겼다.

* 장미십자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 장미십자회(薔薇十字會, 독일어Rosenkreuzer 로젠크로이처, 영어Rosicrucianism)는 중세 후기 독일에 형성되었으며, 고대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비교(秘敎)의 가르침은 물론 자연에 대한 식견과 물질적 분야와 영적 분야에 대한 학식을 비밀리에 보유했다고 말해지는 신비주의적 비밀결사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