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이백(李白)

높은바위 2015. 6. 18. 08:45

 

 

              촉도난(蜀道難)      촉도 길의 어려움

 

噫吁嚱(희우호)                                         어허야아!

危乎高哉(위호고재)                                   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촉도지난)                                   촉으로 가는 길은

難于上靑天(난우상청천)                             푸른 하늘을 오르는 것만큼 험하구나.

蠶叢及魚鳧(잠총급어부)                             잠총과 어양(촉나라 왕들)이1)

開國何茫然(개국하망연)                             나라를 연 것이 아득한데.

 

爾來四萬八千歲(이래사만팔천세)                사만팔천년에 이래

不與秦塞通人煙(불여진새통인연)                진나라 변방과 내왕이 없었다네.        <初頭>

西當太白有鳥道(서당태백유조도)                서쪽으로 태백산과 통하는 험한 새들의 길이 있어

可以橫絶峨眉巓(가이횡절아미전)                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地崩山摧壯士死(지붕산최장사사)                땅이 꺼지고 산이 무너져 장사가 죽더니,

然后天梯石棧相鉤連(연후천제석잔상구련)   비로소 구름다리와 돌길이 놓였다네.

上有六龍回日之高標(상유륙룡회일지고표)   위에는 육룡이 해를 돌리는 높은 곳이 있고,

下有沖波逆折之回川(하유충파역절지회천)   아래로는 세찬 물결이 거꾸로 흐르는 소용돌이가 있다.

 

黃鶴之飛尙不得過(황학지비상부득과)         황학이 날아도 지나가지 못하고,

猿猱欲度愁攀援(원노욕도수반원)               원숭이의 재주로도 기어오르기는 어렵다.

靑泥何盤盤(청니하반반)                            청니령은 얼마나 구불구불하는가!

百步九折縈岩巒(백보구절영암만)               백 걸음에 아홉 번은 바위를 끼고 돈다.

 

捫參歷井仰脇息(문삼역정앙협식)               삼성(參星)을 잡고 정성(井星)을 지나 고개들어 가쁜 숨을 쉬네.2)

以手撫膺坐長嘆(이수무응좌장탄)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저 앉아 긴숨 짓네.        <中段 1>

問君西游何時還(문군서유하시환)               묻노니, 그대는 서쪽으로 떠나서 어느 때 돌아오려오?

畏途巉巖不可攀(외도참암불가반)               위태롭고 험한 바위는 붙잡을 수도 없네.

 

但見悲鳥號古木(단견비조호고목)               보이는 건 고목에서 슬피 우는 새 뿐.

雄飛從雌遶林間(웅비종자요림간)               수컷은 날아서 암컷을 쫒아 나무사이로 도네.

又聞子規啼夜月(우문자규제야월)               또 달밤에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으니,

愁空山(수공산)                                         인적이 없는 산에서 시름에 잠기네.

蜀道之難(촉도지난)                                  촉으로 가는 길 험하여,

難于上靑天(난우상청천)                            푸른 하늘을 오르는 것만큼 험하구나.

 

使人聽此雕朱顔(사인청차조주안)               얘기만 들어도 홍안에 주름이 생기리라.

連峯去天不盈尺(연봉거천불영척)               잇닿은 봉우리는 하늘과 사이가 한 자도 안되고,

枯松倒掛倚絶壁(고송도괘의절벽)               마른 소나무는 거꾸로 절벽에 매달려 있구나.

飛湍瀑流爭喧豗(비단폭류쟁훤회)               폭포수는 여울물이 튀고 소리가 요란한데,

 

砯崖轉石萬壑雷(빙애전석만학뢰)               물이 부딪히고 돌이 구르는 계곡에 천둥가 치네.

其險也若此(기험차약차)                            그 험난함이 이와 같은데,

嗟爾遠道之人(차이원도지인)                      아아 먼길 떠나온 길손이여,

胡爲乎來哉(오위호래재)                            어찌하여 여기 왔느뇨?

劍閣崢嶸而崔嵬(검각쟁영이최외)               검각은 가파르고 험난하구나.3)

 

一夫當關(일부당관)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萬夫莫開(만부막개)                                  만 사람도 꿰뚫지 못한다.

所守或非親(소수혹비친)                           지키는 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化爲狼與豺(화위낭여시)                           이리와 승냥이로 돌변하네.       <中段 2>

 

朝避猛虎(조피맹호)                                 아침엔 사나운 범을 피하고

夕避長蛇(석피장사)                                 저녁엔 큰 뱀을 피해도

磨牙吮血(마아연혈)                                 송곳니를 갈아 피를 빨아먹고

殺人如麻(살인여마)                                 삼대를 베듯 사람을 죽인다.

 

錦城雖雲樂(금성수운락)                          금성이 비록 즐거운 곳이라도4)

不如早還家(불여조환가)                          일찍 집으로 돌아감만 못하리.

蜀道之難(촉도지난)                                촉으로 가는 길 험하도다.

難于上靑天(난우상청천)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험하니,

側身西望長咨嗟(측신서망장자차)             몸을 돌려 서쪽을 바라보며 한숨 짓네.       <終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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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총과 어부 : 모두 전설상의 촉나라 임금임.

 

2) 삼성·정성 : 각각 28숙(宿)의 하나. 둘 다 별 이름인데, ‘달과 별’로 풀이하기도 함.

 

3) 검각 : 사천성 검각현(四川省 劒閣縣)의 북쪽 대검산(大劒山)·소검산(小劒山) 사이에 있는 잔도(棧道),

             일명 검문관(劒門關).

             촉나라의 산천은 험하기 그지없지만 검각은 그중에서도 가장 험한 곳임.

             당 현종(唐 玄宗)이 안록산 난 때 피난 갔던 곳임.

 

4) 금성 : 성도시(成都市)의 별명. 이곳은 사천성의 중심지로 중국 굴지의 도회지임.

             옛날에 비단(錦)을 짜는 정부의 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금관성(錦官城) 또는 금성이라고

             불리워진 것임.

             사천성은 비단의 특산지임.

             또는 이곳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함.

             촉 지방에 해당됨.

 

 

* 이백(李白, 701-762)은 자(字)가 태백(太白)이며,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중국 시인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는 굴원(屈原)·도연명(陶淵明)이후의 위대한 시인으로서, 그의 친구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시의 황금기인 당시(唐詩)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동요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근한 이백은, 중국에서는 물론 동양의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양에서도 널리 소개되고 인기도 높다.

그의 시는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백은 가히 세계적인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백의 먼 조상은, 아마 감숙성(甘肅省)에서 살았는데 수(隋)나라 말경에 가족 중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으므로 서역(西域)으로 솔가하여 거기서 백년 가량 지내다가 그의 아버지 때 사천성(四川省)으로 옮겨온 듯하다.

이백은 청소년기를 사천에서 보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열다섯 살 때 벌써 사부(辭賦)를 지었다.

또 검술도 익혀서 협객들과 휩싸여 아미산(蛾眉山) 등지로 놀러 다니며 칼싸움도 하여 직접 몇 사람을 찌르기도 했다.

또 노장(老壯)사상에 심취하여 도사(道士)와 함께 은거생활도 했다.

 

이백은 스물다섯 살 때, 칼을 차고 넓은 세상을 찾아 사천분지를 떠났다.

이 뒤 마흔 두 살 때까지 계속되는 유랑에서 그의 발자취는 중원천지를 누빈다.

운몽(雲夢, 湖北省)에서는 원임 재상 허어사(許圉師)의 손녀와 결혼했으며(25세), 병주(并州, 山西省)에서는 곽자의(郭子儀)를 만났으며(35세)—나중에 장군이 된 곽자의는 당시 병졸로서 문죄당하고 있었는데 이백이 구해준 것임—조래산(徂徠山, 山東省)의 죽계(竹溪)에서는 친구 다섯과 함께 은거생활을 했으며—세상에서는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고 불렀음—양주(揚州, 江蘇省)에서는 1년도 못되어 30여만 금(金)을 뿌렸다.

 

마흔 두 살에 이백은 오운의 천거로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벼슬, 공봉한림(供奉翰林)을 얻었다.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우대를 받아, 3년간의 장안생활은 무척 풍요로운 것이었다.

황제가 몸소 국의 간을 맞춰주고, 양귀비(楊貴妃)가 벼루를 들어주고, 고력사(高力士)가 신을 벗겨 주었다.

<청평조노래>를 지을 때의 광경은 이러한 득의의 생활의 최고조였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상을 품고 낭만적인 생활을 하는 이백에게 구속이 심한 관리생활은 맞지 않았다.

그는 참소를 받아 마침내 장안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마흔 네 살에 시작된 표류는 다시 중원을 누볐지만, 실의와 가난의 연속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낙척한 시인은 향수에도 젖고 처자도 생각났다.

이 방랑의 시인도 현실인생의 맛을 조금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조금만 생겨도 술을 찾는 그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쉰다섯 살에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이 일어났다.

현종 이융기는 사천지방으로 피난 갔고 숙종(肅宗) 이형(李亨)이 새로 등극했다.

현종 이융기의 열여섯 째 왕자인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이때 딴 뜻을 품었다가 숙종 이형의 군사에게 패했다.

영왕 이린의 막료였던 이백에게도 죽음이 기다렸다.

다행히 전에 도와준 곽자의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야랑(夜郞)에의 귀양으로 감형되었다.

귀양 가는 도중 무산(巫山)에서 사면을 받아서 이백은 안휘성(安徽省)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근의 산천을 감상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는 조용한 삶을 누리다가 예순두 살에 당도(當塗)에서 이승을 하직했다.

 

이백의 작품에 있어 최대의 특색은 그 웅휘한 기상에 있다.

이것은 그의 천재와 그의 개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작시(作詩)에 있어 자잘한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았고 대구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장시(長時)건 단시(短時)건, 마치 조금도 힘을 안들이고 애도 안 쓰며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간 것 같지만, 그것은 그의 인상과 감정을 정확하고 훌륭히 표현해 낸 것이다.

이백의 이러한 낭만적 태도는 자연 당시(唐詩) 이전 수백 년간 가중되어온 시가에 대한 여러 가지 구속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시는 모두 천여 수가 되지만 율시(律詩)는 백 수가 못된다.

이백은 악부(樂府)의 정신과 언어에서 가장 놀라운 천재를 발휘하고 있다.

그의 시집 가운데 <악부>는 140여 편이 있으며, 율시(律詩)·고시(古詩)등 일부의 예외를 제한 대부분이 <악부>의 변형이다.

이백의 천재는 절구(絶句)에서도 최고의 수준을 이루고 있다.

그의 절구는 신비한 운치가 있고 깊은 맛이 있으며 기세가 있는 것이다.

 

이 시 촉도난(蜀道難)은 촉 지방으로 들어가는 길의 어려움을 읊은 시이다.

이백은 고향을 사천성이라 하니 곧 촉 땅이다.

그래서 이 시는 촉을 진압한 한무제(漢武帝)의 횡포를 풍자한 작품이라 하기도 하고, 당 현종(唐 玄宗)이 촉 땅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 하기도 한다.

<중단 2〉의 “遠道之人”이 그들을 가리키는 바라 할 것이다.

서두에서는 촉 땅으로 가는 길은 하늘을 오르는 것같이 험하다는 것과 그 땅의 유래 및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말했다.

그 뒤로 길이 험한 실례(實例)를 하나하나 묘사해 갔다.

인용한 〈중단 1〉은 청니령 고개의 험함을 좀 과장되게 표현했으니 별들을 만질 수 있게 높고 험하다 했다.

<중단 2〉는 앞에서 든 험한 실례의 마무리격이다. 검각산은 낙양의 함곡관(函谷關)처럼 장정 한 사람이 지켜도 만 명의 군사를 막아낼 수가 있다는 ‘一夫當關萬夫莫開’는 자주 일컬어지는 말이다.

끝 연은 ‘이렇게 어려움을 넘어 금관성 곧 성도에 와서 즐거움을 맛보기는 해도 역시 고향보다는 못한 것이니, 오느라고 또 가느라고 고생할 것은 없으리라.’는 뜻이 담겼다.

 

장단구 잡언시(長短句 雜言詩) 48구로, 압운과 평측은 일정하지도 고르지도 않다.

<초두〉의 압운은 天, 然, 煙 자로 평성 ‘선(先)’ 평운이며, 평측은 차례로 ‘平平平, 平平平平, 仄仄平平, 平平仄平平, 平平仄平平, 平仄平平平, 仄平仄仄仄平仄, 仄仄平仄平平平’으로 제6구가 이사부동, 제7구가 이사부동이륙대(二四不同二六對)에 맞을 뿐이라 반법(反法)이나 점법(粘法)은 무시되었다.

<중단 1〉은 압운이 盤, 巒, 歎 자로 평성 ‘한(寒)’ 평운이며 평측은 차례로 ‘平平平平平, 仄仄平仄平平平, 平平仄仄仄仄仄, 仄仄仄平仄平平’으로 이사부동이륙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단 2〉는 압운이 哉, 嵬, 開 자로 평성 ‘회(灰)’ 평운이고, 평측은 차례로 ‘平仄仄仄仄, 仄仄仄仄平平, 平平平平平, 仄仄平平平平平, 仄平平平仄平仄平, 仄仄仄平平, 仄平平仄平’으로 끝 두 구만 이사부동이 이루어졌는데, 5, 6, 7, 8구가 두루 쓰이었다.

<종련〉은 압운이 家, 嗟 자로 평성 ‘마(麻)’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平平平仄, 仄平仄平平, 仄仄平平, 平平仄平平, 仄平平仄平平平’으로 끝 두 구에서 부자연하나마 이사부동과 이사부동이륙대가 이루어졌다.

반법이나 점법은 물론 따져볼 수 없다.

일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