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ㅅ

사랑(6)

높은바위 2024. 6. 8. 07:13

 

소중히 여기어 정성을 다하는 마음. 정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러한 관계. 사랑에는 모성애, 형제애, 이성애, 종교애, 자기애, 운명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시에 있어 사랑은 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바탕으로 지고한 사랑에 대한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동인이 된다.

한편 사랑은 그 좌절로 인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움, 물질성, 구속성 등의 내적 갈등을 야기하는 삶의 감옥 또는 업(業)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강은

거룻배 들쳐 업고

여기서 살자고

흔들흔들 달래고

 

배는 날 껴안고

사랑타령하네

 

어디 갔다 인자 온가

얼싸 둥개 내 사랑아 (김상현, '사랑타령', "노루는 발을 벗어두고", p. 34)

 

누굴 보듬어 안을 만큼

팔이 길었으면 좋겠는데

팔이 몸통 속에 숨어서 나오기를 꺼리니

손짓도 갈고리마저 없이

견디는 날들은 끝도 없는데

매사에 다 끝이 있다 하니

기다려 볼 수밖에

한달 짧으면

한 달 길라 했으니 웃을 수밖에

커다랗게 웃어

몸살로라도 다가가

팔 내밀어 보듬어 볼 수밖에. (김지하, '사랑', "별밭을 우러르며", p. 53)

 

사랑이란

이 모진 세상

외로운 벌판에

길 하나 만드는 것

 

사랑이란

그 길에서 만난

한 사람과

끝까지 끝까지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걸으며

손을 놓지 않겠다는

힘들고 깊은 약속.

 

사랑이란

오랜 세월 흘러

그 길 홀로 걷더라도

언제나 언제까지나

나 혼자가 아니라고

마음 속 다짐 다시 굳히는 것. (김대규, '사랑이란', "짧은 만남 오랜 이별", p. 30)

 

속잎 돋는 봄이면 속잎 속에서 울고

천둥치는 여름 밤엔 천둥 속에서 울고

비오면 빗 속에 숨어 비 맞은 꽃으로 노래하고

눈 맞으며 눈길 걸어가며 젖은 몸으로 노래하고

꿈에 님 보면 이게 생시였으면 하고

생시에 님 보면 이게 꿈이 아닐까 하고

너 만나면 나 먼저 엎드려 울고

너 죽으면 나 먼저 무덤에 들어

네 뼈를 안을 (박해석, '사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p. 39)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사내야

늦은 밤 무너진 집터를 건너오면

여기저기 깨어진 불빛들, 웃음 조각들

 

낮은 지붕 밑의 불켜진 창 곁을 지나며

매일의 밥과 사랑과 자유와

너의 목소리 안에서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살아가노라고

미물의 하찮은 사랑마저도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가를

너는 한탄하고

맹세하고, 조금씩 분노하며

망설이듯 어둠 속을 멀어져 갔다.

 

보인다. 사슬에 묶인 너의 모습

지금 어느 곳 차가운 바닥 위에 서서

입김을 불며, 창살이라도 녹이고 있느냐

 

늦은 밤 무너진 집터를 건너오면

여기저기 깨어진 불빛, 웃음 조각들... 그립다. (김진경, '밥과 사랑과 자유와', "갈문리의 아이들", p. 65)

 

영혼을

불태워

그대 영혼의

빈 자리에 한 줄기

신선한 사랑의

생빛으로

가득

채워 (김소엽, '사랑', "그대는 별로 뜨고", p. 14)

 

어머니 칠십평생 쭈그려 앉아

긴 이랑

밭을 매시네

오리걸음이 따로 없네 (함민복, '사랑 혹은 죄인이 따로 있는 벌', "자본주의의 약속", p.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