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ㅅ

사랑(4)

높은바위 2024. 6. 4. 07:42

 

소중히 여기어 정성을 다하는 마음. 정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러한 관계. 사랑에는 모성애, 형제애, 이성애, 종교애, 자기애, 운명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시에 있어 사랑은 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바탕으로 지고한 사랑에 대한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동인이 된다.

한편 사랑은 그 좌절로 인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움, 물질성, 구속성 등의 내적 갈등을 야기하는 삶의 감옥 또는 업(業)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세상의 저울로는 잴 수 없는

가장 빛나는 것을

비로소 우리는 볼 수 있구나

고통 속을 헤매어 도달한

순금의 사랑을

눈 잃고 더욱 밝게 보이는 (강계순, '都彌夫人도미부인', "동반", p. 83)

 

아아, 미움에도 뿌리를 내리는

사랑이 있더라.

눈 속에서도 피는 동백꽃이 있더라. (오세영, '미움", "눈물에 어리는 하늘 그림자", p. 106)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 '조그만 사랑노래', "풍장", p. 153)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요

사랑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낮아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나태주,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22', "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p. 32)

 

사랑은 운명처럼 왔다가

화살처럼 간다

그러면서 가슴에

인두자국만을 남긴다, 피빛

오래도록 성가시고

잊혀지지 않는. (나태주,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4',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P. 14)

 

사랑은 치통 같은 것

갈 곳이 없을 때

눈을 감으면 나의 그림자는

멀리 사라지고 만다

재채기를 하고 등이 서늘해지면

길 가에 서서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수많은 발바닥에는

치통같은 사랑이 눈을 감고 있다 (차한수, '사랑은', "손", P. 73)

 

머리도 목도 무거워

늘 가던 길을 진종일 헛돌았다

 

기진해서 별 뜰 때서야

왜 그랬는지 알았다

 

그가 내 몸속에 들어와

 

하루종일 나를 

깔고 앉아 있었다

 

내다 버리고 싶었다. (고영조, '사랑에게', "고요한 숲", P.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