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말기의 비참과 혼란속에 파리에서 태어나, 괴로움에 단련되어 인간 사회의 모습과 자기 내부를 노래한 시인이 프랑스와 드 몽코르비에(François de Moncorbier : 1431-1463) 통칭 비용이다.
백년 전쟁 말기의 프랑스는 비참과 혼란의 시대였고, 비용이 그 시정신의 불가사의한 빛으로써 그 혼탁한 사회를 비추어도 거기에 어두움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어두움 속에 있었기에 자기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뉘우침과 인간으로서의 약함으로까지 고양되어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유언서>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자진해서 질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자화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얼굴이 죽음을 응시할 때 우리는 특히 그 시선에서 엄격스러움을 읽게 된다.
그의 생애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해서 절도와 감옥 생활, 방랑과 굶주림, 나중에는 교수형 선고를 받는다.
사형은 마지막 순간에 면했으나, 10년 동안의 파리 추방령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1463년 1월 이후 그의 소식은 묘연해지고 만다.
그의 걸작 <유언서>는 1462년 파리에서 완성 되었는데, 전편이 2,023행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작품이다.
그외에 단장시 16편이 전해지고 있다.
옛 미녀를 노래하는 발라드
내게 말하라 어느 나라 들판에
로마의 미녀 플로라1)는 있는가
아르키피아데스2)와 또한 타이스3)는
그 아름다움에서 한 핏줄의 자매니라.
강물의 언저리나 연못 가에서
부르면 대답하는 메아리 에코4)
그렇게 아름다운 것 세상에 없느니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성 높은 엘로이즈5)
그녀 탓에 아벨라르는 남성을 잃고6)
생드니에서 수도승이 되었나니
사랑 탓에 당해야 했던 괴로움이어라.
지금 어디 있는가 뷔리당7)을
자루에 집어넣고 센 강에다
던지라고 명령한 여왕님은8)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어 같은 목소리로 기막히게 노래하던
백합 같은 흰 얼굴의 블랑슈 태후9)
발이 큰 베르트 공주,10) 비에트리스11) 그리고 알리스12)
멘느 고을 다스리던 아랑뷔르지스
루앙에서 영국인이 화형에 처한
로렌의 위엄있는 잔느,13) 이 여인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 성모님은 아시는가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 있는가.
노래하는 그대여,14) 내가 말한 미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말아라.
가락 없이 후렴만 되풀이하자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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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웠던 여인만 해도 세 명씩이나 된다. 첫째가 꽃의 여인, 둘째가 폼페이우스가 사랑했던 창녀, 셋째가 풍자시(유베나리스 지음)에 나오는 아름다운 창녀임.
2) 소포클레스가 사랑했던 아르키파인 듯.
3) 아테네의 유명한 창녀로 알렉산더의 정부. 혹은 이집트의 성녀로 원래가 창녀였던 여자(이 여인에 관해서는 아나톨 프랑스가 소설화 했음).
4)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요정인 님프.
5) 스승 아벨라르와 깊은 사랑에 빠졌던 미녀. 뒤에 수녀로 평생을 지냈다.
6) 아벨라르는 원수의 습격을 받아 성기를 잃고 말았다.
7) Buridan(1315-58) 철학자. 음탕한 여왕을 골려 주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8) 젊은 사나이를 유혹한 뒤 결국 죽였다는 전설상의 여왕은 그 수가 많아 누군지 분명하지 않다.
9) 루이 6세의 어머니.
10) 샤를마뉴 대왕의 전설적인 어머니.
11) 루이 8세의 아들인 샤를르의 처.
12) 루이 7세의 세 번째 아내.
13) 잔느 다르크(1412-31).
14) 발라드 형식은 후렴구에 이 낱말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회한(悔恨)
늙음의 입구에 서기까지
남달리 즐겨왔던 나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떠남을 숨겼던 나의 젊은 시절을,
나는 슬퍼한다.
그 시절은 걸어서 가버린 것도
말을 타고 가버린 것도 아니니 도대체 어떻게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느닷없이 날아가 버린 채
나에게 남겨준 것 아무것도 없어라.
그 시절은 가버리고
나는
세금도 연금도 가진 것도 하나 없이
슬프고 막막하여 검은 오디 열매보다도 더욱 암담한 모습으로
이곳에 머물러 있다.
사실 말이지만, 친척 가운데 가장 하찮은 자가
내 수중에 몇 푼의 돈이 없다 하여
나를 모른체하기에 급급하니.
아, 한심하도다. 미친 듯한 내 젊은 시절
배움에 열중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였다면,
나도 지금쯤은 집도 푹신한 침대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건만,
허나 어떠했는가! 마치 악동처럼
나는 학교를 등지고 떠났으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아라.
그 옛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토록 노래 잘하고 말 잘하며
언어와 행동이 그토록 유쾌하던
우아하고 상냥한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몇몇은 죽어 차디차게 굳어버렸으니
그들에게서 남은 것 이제는 아무것도 없어라.
천국의 안식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자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 몇몇은
다행히도 대영주나 기사가 되기도 하였으나,
또 몇몇은 온통 헐벗은 채 걸식하며
창문을 통해서나 음식을 구경할 뿐이고,
또 몇몇은
굴 따는 사람처럼 각반 차고 장화 신고
셀레스텡이나 샤르트뢰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신분 다양도 하지 않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