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베르톨트 브레히트(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높은바위 2023. 2. 27. 07:09

 

          후손들에게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짧은 한평생
두려움 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II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드러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랬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III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 * * * * * * * * * * * * *  

 

An die Nachgeborenen


                      I

Wirklich, ich lebe in finstern Zeiten!
Das arglose Wort ist töricht. Eine glatte Stirn
Deutet auf Unempfindlichkeit hin. Der Lachende
Hat die furchtbare Nachricht
Nur noch nicht empfangen.

Was sind das für Zeiten, wo
Ein Gespräch über Bäume fast ein Verbrechen ist
Weil es ein Schweigen über so viele Untaten einschliesst!
Der dort ruhig über die Strasse geht
Ist wohl nicht mehr erreichbar für seine Freunde
Die in Not sind?

Es ist wahr : ich verdiene noch meinen Unterhalt
Aber glaubt mir : das ist nur ein Zufall. Nichts
Von dem, was ich tue, berechtigt mich dazu, mich sattzuessen.
Zufällig bin ich verschont.(Wenn mein Glück aussetzt, bin ich verloren.)

Man sagt mir : Iss und trink du! Sei froh, dass du hast!
Aber wie kann ich essen und trinken, wenn
Ich dem Hungernden entreisse, was ich esse, und
Mein Glas Wasser einem Verdurstenden fehlt?
Und doch esse und trinke ich.

Ich wäre gerne auch weise.
In den alten Büchern steht, was weise ist:
Sich aus dem Streit der Welt halten und die kurze Zeit
Ohne Furcht verbringen
Auch ohne Gewalt
auskommen
Böses mit Gutem vergelten
Seine Wünsche nicht erfüllen, sondern vergessen
Gilt für weise.
Alles das kann ich nicht:
Wirklich, ich lebe in finsteren Zeiten!

                            II

In die städte kam ich zur Zeit der Unordnung
Als da Hunger herrschte.
Unter die Menschen kam ich zu der Zeit des Aufruhrs
Und ich empörte mich mit ihn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Mein Essen ass ich zwischen den Schlachten
Schlafen legte ich mich unter dir Mörder
Der Liebe pflegte ich achtlos
Und die Natur sah ich ohne Geduld.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Strassen führen in den Sumpf zu meiner Zeit.
Die Sprache verriet mich dem Schlächter.
Ich vermochte nur wenig. Aber die Herrschenden
Sassen ohne mich sicherer, das Hoffe ich.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Kräft waren gering. Das Ziel
Lag in grosser Ferne
Es war deutlich sichtbar, wenn auch für mich
Kaum zu erreich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III

Ihr, die ihr auf tauchen werdet aus der Flut
In der wir untergegangen sind
Gedenkt
Wenn ihr von unseren Schwächen sprecht
Auch der finsteren Zeit
Der ihr entronnen seid.
Gingen wir doch, öfter als die Schuhe die Länder wechselnd
Durch die Kriege der Klassen, verzweifelt
Wenn da nur Unrecht war und keine Empörung.

Dabei wissen wir doch:
Auch der Hass gegen die Niedrigkeit
Verzerrt die Züge,
Auch der Zorn über das Unrecht
Macht die Stimme heiser. Ach, wir
Die wir den Boden bereiten wollten für Freundlichkeit
Konnten selber nicht freundlich sein.

Ihr aber, wenn es so weit sein wird
Dass der Mensch dem Menschen ein Helfer ist
Gedenkt unsrer
Mit Nachs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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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가 내뿜는 정서는 쇠잔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 비로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의 퇴조기에 이르러서야 격변의 시절을 살아온 인간은 더 많은 것을,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암울한 시대를 살아왔던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브레히트는 그와 같은 변명 대신에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며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관용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증오와 분노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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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연출가로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도입한 인물이다.

소격효과는 '생소화 효과', '낯설게하기 효과'로도 알려져 있다.

독일의 극문학과 세계 연극의 거장인 브레히트이지만, 공산권 국가의 작가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연구되고 공연된 지는 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브레히트가 발전시킨 '서사극'이라는 이름과 양식, 서사극을 서사극답게 만드는 '낯설게 하기' 기법은 이른바 이화·소격 효과라는 연극의 일반화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낯설게 하기'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고정관념에 뿌리 박혀 있는 사건이나 인물, 상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수법이다.

 
이런 입장을 따르면 브레히트의 연극이나 시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셈이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껄끄러운 불편함이 남아서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해야 한다.


서사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내려온 기존 극작기법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을 감상할 때의 보통의 태도(연극 무대에 대한 공감, 주인공에 대한 동화, 대리만족 등)들을 부정한다.
대신 연극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낯설게' '관찰하는' 연극을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극의 진행을 예상할 수 없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감성적인 관람보다는 이성적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관람을 작가가 주문한다.
연극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현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브레히트가 30년대 '망명문학(Exileliteratur)'의 기수로서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던 것은 그의 연극이론에서부터 이미 보이고 있었다.
다음 그의 말은 그가 연극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으며, 그가 만든 결과물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희곡작가이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알리고자 한다. 인간시장에서 나는 보았다.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나는, 희곡작가인 나는 그런 것을 알리고자 한다."

생소화 효과는 연극계 뿐만 아니라 관련 인문학에서도 종종 인용이 된다.
심지어는 연극학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역사교육이론에서도 역사 해석과 역사적 사고 증진 등의 방법으로 논의될 정도이니 이 정도면 한 획을 그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독일어권 작가는 '막스 프리슈(Max Frisch)'나 이른바 '희비극'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errenmatt)' 등을 꼽을 수 있다.
브레히트 바로 다음 세대 독일어권 연극계를 잡았던 작가들이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스위스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