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제7대 국왕인 세조는,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1453년 계유정난의 정변을 일으켜 즉위한 군주 수양대군이다.
그의 야심이 은연중에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일이다.
박팽년이 그에게 우비인 도롱이를 빌리러 사람을 보냈다.
이에 도롱이를 빌려주며 시(詩) 한 수를 지어 보냈는데, 시사를 개탄하고 의를 결속하는 내용의 것으로 후세 절신(節臣)들 간에 『도롱이를 빌린다』는 말이 결의(結義)의 관용구가 되었을이만큼 명시가 되었다.
머리 위에는 분명히 백일(白日)인데
도롱이를 주는 것은 뜻이 있는 것이요
오호(五湖)의 연우(烟雨 : 안개비)에
좋게 서로 찾아보고자 함인져
박팽년은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전후해서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다.
1454년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1455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안평대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그를 형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세조가 즉위한 다음 해인 1456년, 형조참판의 자리에 있으면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박팽년)· 이개(李塏) ·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김문기(金文起)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6월 2일 잡혀가 고문을 받았다.
박팽년은 혹독한 형문을 당하면서도 세조에게 상감, 주상이라 하지 않고, 진사(進賜), 나으리(羅阿里)라고 불렀다.
의금부에서 세조의 친국으로 고문받던 중 6월 7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