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개장(醬)국과 보신탕(補身湯)

높은바위 2025. 5. 22. 06:50

 

"할아버지께서는 복날이면 개장국을 드시러 동네 노인네들과 함께 읍으로 나가셨다."

"보신탕을 드십니까? 좋죠. 몸 보신하시느라고 드시나요?"

 

'개장(醬)국'은 '개고기를 고아 끓인 국'이며, '보신탕(補身湯)'은 '몸의 원기를 돕는 탕이라는 뜻으로, '개장국'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사철탕', '영양탕', '지양탕(地羊湯)', '구장(狗醬)', '계절탕(季節湯)', '멍멍탕', '꺼우탕', '개정국', '단고기국(북한어)' 등으로 불리며, 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 채소와 함께 고아 끓인 국으로, 옛날부터 삼복(三伏) 때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이를 먹는 풍습이 있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보신탕은 이승만 정권 시절에 생긴 말이다.

그 이전에는 '개장국'이었다.

개고기를 된장에 끓인 장국에 말아먹는다는 뜻에서 개장국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개고기가 많이 식용되었다.

1600년대에 장계향(張桂香 : 1598년 ~ 1680년)이 쓴 『음식디미방(閨壼是議方)』에는 개장국을 비롯하여 개장국 누르미, 개장고지 누르미, 개장찜, 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과 같이 개고기를 이용한 각종 조리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장계향이 살았던 17세기 무렵에는 개고기 식용이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루어졌고, 또 매우 중요한 음식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규합총서(閨閤叢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경도잡지(京都雜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 여러 조리서와 문헌에서 개장국 끓이는 법을 찾아볼 수 있다.

개장국은 특히 집안이나 마을에 큰 잔치가 있을 때, 그리고 삼복더위에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어 먹곤 했다.

개장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우선 개를 잡아 파 밑동을 넣고 푹 삶는다.

여기에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고기가 충분히 익어서 살이 물러지면 살과 내장을 각각 잘게 찢거나 썰어서 산초가루를 넣고 국으로 끓여서 먹었다.

홍석모(洪錫謨 : 1781년 ~ 1857년)가 살았던 19세기 서울에서는 시장에서도 개장국을 많이 판매하였다.

홍석모보다 후대 사람인 조풍연(趙豊衍 : 1914년 ~ 1991년) 또한 서울 사람들은 '복놀이'를 매우 즐겨서, 복날에는 상인들이 세 번 모두 가게 문을 닫고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가지고 교외 수풀 우거진 곳이나 냇가로 가서 포식하고 놀았다"라고 적었다(『서울잡학사전』)

또 조선 정조 때 간행된 '명의록언해'라는 책에서, 궁궐의 담을 넘어가 나쁜 일을 저질렀던 범인을 국문하는 과정에서 그 범인이 '개장국'을 먹고 담을 넘어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구려 때는 '오가'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거기에 '구가'가 나온다.

개를 사육하여 이를 먹거리로 했던 것 같다는 역사가들의 견해이다.

그것은 '개'를 나타내는 한자가 '견'이 아닌 '구'에서 알 수 있다.

'견'은 대개 살아있는 개를 말하며, '구'는 죽거나 먹을 수 있는 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탕'이라는 말이 생겼고, '견탕'이라는 말은 없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이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간판에 쓰인 '개장국'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설명을 하였다.

그랬더니 미개민족이 개를 잡아먹는다고, '개장국'을 먹지 못하게 하는 명령을 내리자, '개장국'이 '보신탕'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의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 있다.

 

이후 88 올림픽 때, '보신탕'이 외국인들에게 문제가 되어, 이 '보신탕'마저 먹지 못하게 하니까, '영양탕', '사철탕'으로 변신을 한다.

최근 보신탕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하며, 이 직업군에 종사하는 분들을 보상하며 타 직업군으로 유도하는 정책이 만들어졌으나, 이것이 고유 전통음식 맛을 알고, 이어가는 민중에게는 이 음식이 그 언어조차 못쓰게 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꾸만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