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포수 한성순(韓性純) 이야기

높은바위 2025. 5. 13. 06:50

 

전남 구례사람 한성순(韓性純)은 한말의 명포수였다.

어찌나 우직(愚直)했던지 통칭 '우포수(愚砲手)'로 불리었다.

 

50리의 산길을 밤낮 가림 없이 이웃처럼 넘나들며, 다정히 놀던 황사중(黃仕中=光陽광양)이 1906년에 항일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위태로운 그 일을 일으킨데 반대하였고, 또 참여할 것을 거절하였다.

배운 것도 없고 소견도 좁길래, 그 의병의 뜻이 뭣이며, 또 의로운 것, 또 나라라는 것을 몰랐다.

알아도 그의 생각으로 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한말의 서민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마을이 왜군에게 포위되어, 의병대장 황사중(黃仕中)이 자수하지 않으면, 마을을 태우고, 동민을 학살하겠다는 포고를 내렸다.

그가 진중에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우포수는 엽총을 들고 왜군영에 달려갔다.

그는 단신으로 왜군 중대를 꼼짝 못 하게 위협해놓고, 영중에 들어가 묶여있는 친구 사중(仕中)을 붙들고 울었다.

이 또한 엽총 하나로 그를 살려 내야겠다는, 그 우직함의 효과적인 가치표현이었다.

 

그것이 실패하자, 나도 의병이라면서 총을 쏘라 하였다.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내쫓자 다시 달라붙어 죽이라 하였다.

그들은 집중사격을 받았다.

 

황사중(黃仕中)은 의병을 일으킨 대가로, 그리고 한성순은 그 우직의 대가로 죽었다.

또 전자가 흘린 건 우국(憂國)의 피지만, 후자가 흘린 건 휴머니티의 피이기도 하다.

우직한 집념... 언뜻 보기에 바보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저력으로 작용하는 이 기질은, 한국의 가장 고유한 기질의 전형적인 하나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