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모래(A grain of sand)
만약 별들의 공간이 끝이 없고
다른 태양이 지금의 태양을 승계한다면,
믿을 이유가 없네
우리의 지구가 유일하다고.
무한한 별자리들 속에
수백만의 세계가 있을 수 있고,
그 각각의 세계는 축복과 저주를 하고
운명을 주재할 신을 가졌으리라.
한번 생각해 보라! 수백만의 신이
하나하나 중요한 흐름을 주재하고,
그 모두의 위에서 전체를 지휘하는
최고의 신이 있다는 것을.
그 엄청난 위상이 내 마음을 짓누르네,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난 위안을 찾고 기뻐하네
작은 것들에서.
보라! 내 빈 손안에,
지구가 둥글게 돌고 있을 동안,
난 한 알의 모래를 쥐고,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하네.
아! 만약 내가 보는 눈이 있다면,
그리고 이해할 두뇌가 있다면,
난 생각하네, 삶의 신비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이 한 알의 모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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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무한의 우주 속에서 모래알처럼 작은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시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넓다. 우리는 그 속에서 숭배하는 신을 가졌으며, 사회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법과 도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겪으며, 이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때로는 위안하거나,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시인은 우리 생각의 범위를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해 본다. 우리 우주가 무한하고,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이 지구뿐만이 아니라 수백만 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별에 살고 있는 생물도 우리와 같은 도덕과 법 체계를 갖추었으며, 전지전능한 신을 가졌을까?
시인은 아마 각 별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그들 자신의 신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신은 나름대로 그 별의 생명체에게 축복을 주고, 운명을 주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수백만의 신들이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우주가 그렇게 무질서하게 되도록 신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본다.
수백만의 신이 각자 자기의 별을 주재할지 모르지만, 이를 모두 총괄하여 지휘하는 '최고의 신' (A Deity supreme)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그렇다면, 지구 속의 나의 삶도 감당하기 힘든데, 더 큰 우주 속에서의 나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시인은 참담한 심정이 된다.
그러곤 광활한 우주에서 '마음을 돌려' (it swings), '작은 것들' (little things)에서 '위안을 받고 있다' (find relief).
'지구가 둥글게 돌고 있을 동안' (while round the earth careens), 손에 쥔 한 알의 모래를 들여다보며, 그 작은 알맹이의 의미를 찾고 있다.
자신이 혜안이 있고, 현명하다면, 이 한 알의 모래 속에 담긴 '삶의 신비' (Life's mystery)를 알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자탄하고 있다.
삶의 진리는 우주 저 먼 곳이나, 심오한 신학이나 철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우리 삶 주변에 있다고, 시인은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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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서비스(Robert W. Service, 1874년 1월 16일 ~ 1958년 9월 11일, 향년 84세)는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시인, 작가이다.
종종 "유콘의 음유시인(Bard of the Yukon)"이라고 불린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랭커셔에서 태어난 그는 직업이 은행원이었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서부를 오랫동안 여행하였지만 가난했다.
은행이 그를 유콘으로 보냈을 때, 그는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댄 맥그루의 총격"과 "샘 맥기의 화장(The cremation of Sam McGee)"이라는 두 편의 시를 썼는데, 이 시는 골드러시나 광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작가의 놀라운 진정성을 보여주었고 즉각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에 힘입어 그는 같은 주제로 더 많은 시를 썼고, 이 시들은 '사워도우의 노래(Songs of a Sourdough)'(미국에서는 《유콘의 마법》(The Spell of the Yukon and Other Verses)로 제목이 바뀌었다)로 출판되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그의 다음 컬렉션인 1908년에 두 번째 운문집, Ballads of a Cheechako가 똑같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서비스는 파리와 프랑스 리비에라를 기반으로 널리 여행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여유가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인기와 그가 그것들을 쓰는 속도 때문에, 그의 작품을 비평가들은 Doggerel(또는 doggrel은 리듬과 운율이 불규칙한 시이며, 종종 해학이나 코믹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다. 또는 단조로운 리듬, 쉬운 운율, 저렴하거나 사소한 의미를 가진 구절을 의미할 수 있다)로 일축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을 "시가 아닌 운문"으로 분류하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세 번째 시집 《롤링 스톤의 운율》(1912)을 썼다.
서비스는 1912년에 도슨 시티를 영원히 떠났다.
1912년부터 1913년까지 그는 발칸 전쟁 동안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을 지냈다.
1913년, 서비스는 파리로 이주하여 15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는 라틴 지구에 정착하여 화가로 위장했다.
1913년 6월, 그는 증류소 주인의 딸인 파리지엔느 제르맹 부르고인(Germaine Bourgoin)과 결혼하여,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코트 다르무에 있는 여름 별장을 구입했다.
그들은 1917년 1월에 태어난 쌍둥이 딸을 낳았지만, 한 명은 1918년 2월에 성홍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