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과 그 비극의 역사/아버지의 城

중공군의 침입

높은바위 2019. 7. 2. 18:43


 

  

중공군의 침입


     

중국은 자기들 국경선 가까이 밀어닥치는

UN군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자국의 안전과 조선의 형제를 돕기 위해

인민의용군의 이름으로 195010~11.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승승장구 압록강으로 진격하던

한국군(6사단 2연대 3대대)

1025일 중공군의 반격을 받고

1031일과 111일에는 한국군 1사단과

미 제1기갑사단이 운산에서

기습공격을 받고 퇴각해야했다.

 

한편 118일에는

미공군 B-29 70대의 출격으로

신의주를 지도위에서 지워버렸고  

희령은 네이팜탄의 맹폭으로 전소되었다.

 

맥아더는 북한지역의 모든 시설물,

공장, 시가지, 마을을 포격하여

전선과 중국국경선 사이를

황무지로 만들라는 명령이 있었고

이 폭격에서 모택동의 큰아들(모안영)이가 사망했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꺾일 줄 모르는 그들의 기세 앞에

UN군은 1125일 전 전선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을 이끌고

총퇴각을 결행해야했다.

 

언제 어디서 들려올지도 모를 피리소리,

징소리에 쫓겨

밤낮을 가릴 수 없던 후퇴행렬,

그것은 천추에 한이 될 치욕이었다.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