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의 침입
중국은 자기들 국경선 가까이 밀어닥치는
UN군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자국의 안전과 조선의 형제를 돕기 위해
인민의용군의 이름으로 1950년 10월~11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승승장구 압록강으로 진격하던
한국군(제6사단 2연대 3대대)은
10월 25일 중공군의 반격을 받고
10월 31일과 11월1일에는 한국군 1사단과
미 제1기갑사단이 운산에서
기습공격을 받고 퇴각해야했다.
한편 11월 8일에는
미공군 B-29 70대의 출격으로
신의주를 지도위에서 지워버렸고
희령은 네이팜탄의 맹폭으로 전소되었다.
맥아더는 북한지역의 모든 시설물,
공장, 시가지, 마을을 포격하여
전선과 중국국경선 사이를
황무지로 만들라는 명령이 있었고
이 폭격에서 모택동의 큰아들(모안영)이가 사망했다.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꺾일 줄 모르는 그들의 기세 앞에
UN군은 11월 25일 전 전선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을 이끌고
총퇴각을 결행해야했다.
언제 어디서 들려올지도 모를 피리소리,
징소리에 쫓겨
밤낮을 가릴 수 없던 후퇴행렬,
그것은 천추에 한이 될 치욕이었다.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