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성(性) 담론의 어제와 오늘

높은바위 2015. 11. 16. 07:59

 

성(性)은 무엇일까?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사람의 원초적 충동은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다.

에로스는 삶의 충동이고, 사랑과 섹스는 이 충동의 대표적 표현 방식이다.

타나토스는 죽음의 충동이고, 자살뿐 아니라 폭력․살인 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극도에 이른 삶의 충동은 죽음의 충동과 다르지 않다.

섹스 막바지에 느끼는 오르가슴은 프랑스 말로 ‘작은 죽음(le petit mort)’이라 부른다.

 

사회는 원초적 충동의 표현을 무제한 허용하지 않는다.

충동의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 금기다.

금기는 법이나 관습으로 있을 수도 있고, 내 마음 속에 규범으로 있을 수도 있다.

에로스와 관련하여 가장 널리 퍼진 것은 근친상간의 금기이고, 타나토스와 관련하여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폭력과 살인의 금기다.

 

그러나 위반을 허용하지 않는 금기는 없고, 어쩌면 금기는 위반하라고 있다.

살인의 금기가 있더라도 사람 죽이는 일은 일어난다.

우리 조상에게 섹스는 곧 자식 만들기 또는 남편의 배설이었고 그 이상은 금기였다.

 

금기의 위반은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금기를 위반하는 섹스는 비난받아야 할까?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바타이유에 따르면 사람의 섹스는 동물성이 기초이고, 동물성을 배격하는 것은 금기다.

그러나 사람은 금기를 위반하더라도 짐승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의 위반은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 표현이 아무리 과감한 젊은이도, 원숭이처럼 남들 보는 데서 섹스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금기를 위반하더라도 규칙이 있기 때문에, 정글이 아니라 사회를 형성한다.

 

바타이유는 금기를 위반하는 섹스가 사람의 사물화를 막아 준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사물화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물로 취급받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직장에서는, 아무리 따뜻한 정이 오가더라도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이 하나의 상품이다.

이런 뜻에서 사람은 대체로 일하는 곳에서 사물화한다.

사람의 이런 사물화는 돈이 강력하여 사람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람의 섹스 충동은 사물화할 수 있을까?

같은 논리에 따르면 사람이 이성이나 의지로 섹스 충동을 부정하고, 죽일 수 있어야 이 충동은 사물화한다.

그러나 섹스 충동은 더러 부정하려 해 보지만 소용없다.

부정하고 부정해도 다시 고개를 쳐든다.

바타이유에 따르면, 사람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사물화하지만, 금기를 위반하는 섹스를 통해 오히려 사물화를 어느 정도 극복한다.

문명은 그 동안 사람들이 섹스 충동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억압해 왔으나, 오히려 이런 억압을 어느 정도 푸는 것이 사람의 사물화를 막고, 문명 발달의 새로운 동력을 얻는 길이다.

 

섹스에 대한 전통 관념은 ‘결혼 안에서의 섹스(sex within marriage)’만 허용한다.

그러나 많은 젊은 세대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결혼의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성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랑 있는 섹스(sex with love)’를 주장한다.

한편 요즘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시시하게 여기는 ‘사랑 없는 섹스(sex without love)’ 도 있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섹스다.

섹스에 감정을 섞는 것이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과 감정을 교류하면 기쁘고 뿌듯할 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감정을 섞어 자존심이 상할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감정을 배제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사랑 없는 섹스는 아무 감정도 없는 섹스가 아니다.

이런 섹스는 깊이 보면 내 몸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남의 감정, 남에 대한 내 감정은 무시하더라도, 내 몸에 대한 내 감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내 몸에 대한 자기 도취적 사랑, 곧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사랑 없는 섹스의 정체다.

 

왜 현대의 사랑 없는 섹스는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요구할까?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allrd)에 따르면, 현대 소비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호는 몸이다.

소비 사회에서 몸은 경제면으로, 사유 재산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따라서 개인은 자기 몸을 재산으로 관리하고 조작하고 투자한다.

또 몸은 심리 면으로 사회 지위를 표시하는 중요한 기호이므로, 자기도취적 숭배의 대상이 된다.

소비 사회에서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없는 사람, 운동이나 다이어트로 몸을 돌보고 가꾸지 않는 사람은 손가락질 받는다.

 

가장 아름다운 소비 기호로서, 자기도취적 사랑의 대상이 된 몸은 이윤을 낳는다.

소비 사회에서 수많은 상품은, 고객을 얻기 위해 이 시대 최고의 유행의상인 알몸을 이용한다.

사랑 없는 섹스, 곧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만 있는 섹스는, 몸을 가장 아름다운 기호로 소비하는 사회가 요구한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런 섹스와 사랑은 바타이유와 반대로, 사람의 사물화 현상이다.

사람의 사물화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물로 취급받는 현상이다.

소비 사회에서 사랑 없는 섹스는, 나든 남이든 살아 있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죽은 사물, 즉 기호로 취급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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