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맹호연(孟浩然)

높은바위 2015. 6. 17. 08:06

 

 

            친구의 농장에 들러(過故人莊)

 

故人具鷄黍(고인구계서)                친구가 닭고기와 기장밥을 마련하고,1)

邀我至田家(요아지전가)                나를 시골집으로 불렀다.

 

綠樹村邊合(녹수촌변합)                신록은 마을 주위를 에워싸고,

靑山郭外斜(청산곽외사)                청산은 성곽 너머에 비껴있다.

 

開軒面場圃(개헌면장포)                들창을 열고 마당과 채마밭을 바라보며,2)

把酒話桑麻(파주화상마)                술잔을 들고 삼밭과 뽕나무를 얘기한다.3)

 

待到重陽日(대도중양일)                중양절(重陽節)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還來就菊花(환래취국화)                다시 와 국화 앞에 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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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구계서(故人具鷄黍)는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였다. 는 구절이 있는데 후세(後世)에 와서는 진정으로 우러나온 대접의 의미로 쓰였다.

 

2) 장포(場圃)는 시경(詩經) 빈풍(豳風)에 나오는 구절로 채마밭은 춘하(春夏)에는 밭으로 쓰다가 가을에는 타작을 위한 마당으로 쓰인다.

 

3) 파주화상마(把酒話桑麻)의 내용은 도연명(陶淵明)의 귀원전거 2(歸園田居, 二)에

상견무잡언(想見無雜言) 서로 만나도 번잡한 말 하지 않고

단도상마장(但道桑麻長) 오직 뽕과 삼밭에 관한 대화뿐이네. 라는 구절이 있다.

 

 

 

* 맹호연(孟浩然)은 자연시인(自然詩人)으로서 당시 왕유(王維)와 병칭되던 시인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왕유는 귀족적인 은사(隱士)로서 부귀공명을 다 맛본 뒤에 산수(山水)의 품에 귀의한 사람으로, 그의 심경과 작품의 분위기는 안정되고 평담한 것이다.

그러나 맹호연은 마흔 살까지 오랫동안 산수속에 야인으로 지냈지만 부귀공명에 대한 야심이 점점 자라났으니 그의 심경과 작품의 분위기는 왕유처럼 안정되고 평담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마흔 살에 서울로 가서 진사(進士)시험을 쳤으나 실패, 크게 낙심하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자연시인이지만 왕유와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될 뿐이다.

 

마지막 귀절인, "還來就菊花(환래취국화)         다시 와 국화 앞에 나서리."는 우리 나라의 현대시(現代詩) 중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싯귀가 생각나지 않은가?

 

 

역시 친구라는 것은 좋아 (다!다!다!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