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매관매직(賣官賣職)과 황감역(黃監役)

높은바위 2025. 3. 8. 07:19

 

한말 갑신(甲申:1884년, 고종 21년), 을유(乙酉:1885년, 고종 22년)년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성행했던 매관매직의 악풍은 20여 년간을 휩쓸었다.

매매된 관직은 주로 감사(監司),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 현감(縣監), 현령(縣令), 중군(中軍), 영장(營將), 도사(都使), 감역(監役: 조선 시대, 선공감(繕工監)  종구품(從九品) 벼슬을 이르던 .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감독하였다.), 주사(主事), 참봉(參奉)이었고, 이 매관루트가 약 10여 루트로 형성되어, 그 정점에는 이왕가의 귀족, 외척, 대신, 근시여관(近侍女官), 그리고 일본, 노국, 중국 등 외세의 권신 등이 앉아 있었다.

 

이 루트 간의 암목과 경쟁으로 매관매직의 단가는 마구 상승하였다.

일례를 들면 5만 량으로 흥정되었던 나주목사의 벼슬이, 이를 시기하는 루트의 입주(入奏)로 10만 량으로 배가하여 낙찰된 일이 있었으며, 이 혹심한 경쟁과 중간 매관중매인들의 농간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겼다.

즉 벼슬의 수요자보다 공급이 혹심하였기로, 돈 많은 이에게는 본인도 모른 사이에 벼슬 임명장이 날아들고, 그 대가로서 돈을 뜯기 우는 폐단도 널리 횡행하였던 것이다.

 

여기 보성(寶城) 서 있었던 한 실례를 들어본다.

보성 읍내에 이 씨 성(李氏姓)의 부호(富豪)가 있었다. 

집주인은 과부인데, 마을에서 그 집을 부를 때, 그 집에서 기르는 노랑개가 인연이 되어 <황발이 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돈 많은 벼슬 수요자를 찾아 헤매던 매관매직 브로커 하나가 이 황발이 집에 눈독을 들이고, 본인의 사정이나 의사를 묻지 않고 매관 루트에 상신하였다.

그같이 해서 얻는 선공감역(繕工監役)의 관작 임명장에는 "황발(黃潑)"이라는 피임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브로커는 황발이 집이라는 소문만 듣고, 그 집주인을 황발로 알았던 것이다.

이 브로커가 문적을 갖고 그 과부집에 들리니, 이 과부는 「성주(聖主)가 은급금수(恩及禽獸)하시니 가문의 영광이다」하며, 상납금 5천 냥과 중비전(中費錢) 5백 냥을 물어주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이 과부집 황발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황감역(黃監役)>이라 불리었고, 황발이집도 황감역집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그 가문이 일제강점기까지도 그같이 불렸다 한다.《尹孝定著(윤효정저) 韓末秘史(한말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