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두보(杜甫)

높은바위 2015. 7. 18. 08:00

 

 

                          추흥(秋興)  가을에 이는 감흥

 

                                               1

玉露凋傷楓樹林(옥로조상풍수림)                   옥같이 맑은 이슬이 단풍나무 숲을 시들게 하고,

巫山巫峽氣蕭森(무산무협기소삼)                   무산과 무협의1) 가을빛은 조용하고 쓸쓸쿠나.

江間波浪兼天湧(강간파랑겸천용)                   장강(長江)의 파도는 하늘 닿을 듯 용솟음치고,2)

塞上風雲接地陰(새상풍운접지음)                   변방 산 관문(關門)의 바람과 구름은 평지까지 내려 닿아 어둑어둑하네.

叢菊兩開他日淚(총국양개타일루)                   국화꽃 무더기로 피어남을 지난해에 이어 또 보니 앞날의 눈물거리가 되겠고,

孤舟一繫故園心(고주일계고원심)                   작은 배 한 척 매어 두고 있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에서일세.

寒衣處處催刀尺(한의처처최도척)                   곳곳마다 겨울 옷 마름질하기에 한창이라,

白帝城高急暮砧(백제성고급모침)                   백제성3) 높은 곳 저녁에 다듬잇방망이 소리4) 다급하기도 하구나.

 

                                               2

夔府孤城落日斜(기부고성락일사)                   기부(夔府) 외론 성에 낙조(석양) 비낄 때,

每依北斗望京華(매의북두만경화)                   번번이 북두성 가리키는 경화(서울)를 바라본다.

聽猿實下三聲淚(청원실하삼성루)                   잔나비 세 번 울음소리에 정말로 눈물 흘리고,

奉使虛隨八月槎(봉사허수팔월사)                   절도사 사명 받들어 헛되이 팔월 뗏목을 따랐다니.

畵省香爐違伏枕(화성향로위복침)                   채색 관청(상서성) 향로 아래서 베개 베던 일 어기고는,

山樓粉堞隱悲笳(산루분첩은비가)                   산성 누각의 성가퀴에 슬픈 호가 소리만 은은하다.

請看石上藤蘿月(청간석상등라월)                   한 번 보시게나, 바위 위 등넝쿨 댕댕이덩쿨의 달빛이,

已映洲前蘆荻花(이영주전로적화)                   이미 모래섬 앞 갈대꽃을 비추는 것을.

 

                                               3

千家山郭靜朝暉(천가산곽정조휘)                   일천 집 산마을에 아침 햇살 고요한데,

日日江樓坐翠微(일일강루좌취미)                   날마다 강 다락 은은한 비췻빛 속에 앉는다.

信宿漁人還泛泛(신숙어인환범범)                   하룻밤 배에 묵고도 어부는 여전히 둥실둥실 떠가고,

淸秋燕子故飛飛(청추연자고비비)                   맑은 가을에 제비들은 예전처럼 날아다닌다.

匡衡抗疏功名薄(광형항소공명박)                   광형(匡衡)처럼 항소(抗疏)해도 공명을 못 이루었고,

劉向傳經心事違(유향전경심사위)                   유향(劉向)처럼 경전에 주석하려 해도 마음과 일은 어그러진 신세.

同學少年多不賤(동학소년다불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미천하지 않아,

五陵衣馬自輕肥(오릉의마자경비)                   오릉 땅을 내달리는 옷과 말이 절로 가볍고 살져 있거늘.

 

                                               4

聞道長安似奕棋(문도장안사혁기)                   듣자니 장안의 일은 바둑판 장기판 같다 하니,

百年世事不勝悲(백년세사불승비)                   백 년 세상사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

王侯第宅皆新主(왕후제택개신주)                   왕후의 제택은 모두 새 주인이 들어앉았고,

文武衣冠異昔時(문무의관이석시)                   의관을 차려입은 문무 관원은 지난날과 사람이 다르다지.

直北關山金鼓振(직북관산금고진)                   기산 북방의 관산(關山)에 전투의 쇠북 소리 요란하고,

征西車馬羽書遲(정서거마우서치)                   서쪽 토번 정벌하러 간 거마는 우서(승전보)가 더디다.

魚龍寂寞秋江冷(어룡적막추강냉)                   어룡(魚龍)은 적막하고 가을 강이 차가운데,

故國平居有所思(고국평거유소사)                   고국(서울) 옛집에서 평소 지내던 일이 그립네.

 

                                               5

蓬萊宮闕對南山(봉래궁궐대남산)                   봉래궁 궁궐은5) 종남산을6) 마주하고,

承露金莖霄漢間(승로금경소한간)                   승로반의 금경 기둥이7) 하늘에 치솟았네.

西望瑤池降王母(서망요지강왕모)                   서쪽 요지를8) 보면 서왕모9) 내리는 모습 보이고,

東來紫氣滿函關(동래자기만함관)                   동에서 오는 붉은 기운 함곡관에10) 그득하네.

雲移雉尾開宮扇(운이치미개궁선)                   구름 모양 휘장이 치미 가리개로 옮아 둥근 부채 열리고,

日繞龍麟識聖顔(일요용린식성안)                   햇살이 곤룡포 용의 비늘 수를 둘러싸니 임금님 용안을 알리로다.

一臥滄江驚歲晩(일와창강경세만)                   병으로 무협에 자리잡아 이 해도 저물어 감을 놀라나니,

幾回靑鎖點朝班(기회청쇄점조반)                   조회 반열에11) 끼어 대궐문을 드나들던 게 그 몇 번이던가.

 

                                               6

瞿唐峽口曲江頭(구당협구곡강두)                   구당협 어구와 곡강의 언덕,

萬里風烟接素秋(만리풍연접소추)                   만리 멀어도 풍광은 함께 가을에 이었네.

花악夾城通御氣(화악협성통어기)                   화악(花켍)의 협성에는 천자의 기운이 통하더니,

芙蓉小苑入邊愁(부용소원입변수)                   부용(芙蓉)의 작은 동산에 변방의 근심이 들다니.

珠簾앨柱圍黃鵠(주렴수주위황곡)                   주렴과 비단 기둥에는 노란 고니새 장식을 둘렀고,

錦纜牙檣起白鷗(금람아장기백구)                   비단 닻줄과 상아 돛대에 흰 물새가 일어났었지.

回首可憐歌舞地(회수가련가무지)                   머리 돌려보니 가련하여라, 춤추고 노래하던 그 땅이여!

秦中自古帝王州(진중자고제왕주)                   진중(秦中)은 예부터 제왕의 고을이로다.

 

                                               7

昆明池水漢時功(곤명지수한시공)                   곤명지 물은 한나라 때 공적으로 이루어,

武帝旌旗在眼中(무제정기재안중)                   한무제의 깃발들이 눈앞에 삼삼하다.

織女機絲虛夜月(직녀기사처야월)                   직녀의 베 짜는 실들은 달빛 아래 부질없고,

石鯨鱗甲動秋風(석경린갑동추풍)                   돌고래 비늘은 가을바람에 움찔거리리.

波漂菰米沈雲黑(파표고미침운흑)                   물결에 떠다니는 줄열매는 검은 구름인 양 잠겨 있고,

露冷蓮房墜粉紅(노랭연방타분홍)                   이슬 차가운 연방(蓮房)은 붉은 분처럼 떨어지리라.

關塞極天唯鳥道(관새극천유조도)                   관새는 하늘에 닿아 새들이나 넘나드니,

江湖滿地一漁翁(강호만지일어옹)                   땅에 가득한 강과 호수에 고기 잡는 늙은이로 지내련다.

 

                                               8

昆吾御宿自逶迆(곤오어숙자위이)                   곤오산 지나 어숙천 지나 구불구불 길을 가면,

紫閣峰陰入渼陂(자각봉음입미피)                   자각봉 그늘은 미피(渼陂)에 반나마 들어왔지.

香稻啄餘鸚鵡粒(향도탁여앵무립)                   향기로운 벼는 앵무새들이 쪼아 먹다 남긴 알곡,

碧梧棲老鳳凰枝(벽오서로봉황지)                   푸른 오동나무는 늙은 봉황이 깃드는 가지.

佳人拾翠春相問(가인습취춘상문)                   가인들은 비취 새 깃털 주우며 봄 인사를 하고,

仙侶同舟晩更移(선려동주만갱이)                   신선 짝들은 배 타고 노닐다 저녁에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綵筆昔曾干氣象(채필석증간기상)                   오색필은 옛적에 하늘의 기상마저 움직였다만,

白頭吟望苦低垂(백두음망고저수)                   흰머리로 시 읊으며 멀리 보다 괴로이 고개 떨어뜨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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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산·무협(巫山·巫峽) : 현재의 중경시 무산현(重慶市 巫山縣)과 그 무협 골짜기.

무협은 양편에 암벽이 높이 솟아 낮에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험하기로 유명함.

그 골짜기로 장강 곧 양자강이 흐르는데, 무협과 서릉협(西陵峽), 구당협(瞿唐峽)을 삼협이라 하며, 부근에 백제성(白帝城) 같은 명승고적이 많음.

 

2) 겸천용(兼天湧) : 하늘을 아우를 듯 솟구침. 하늘까지 솟음.

 

3) 백제성(白帝城) : 무협 부근의 성.

한말(漢末), 공손술(公孫述)이 이곳에 웅거했는데 흰 용이 우물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이름 붙였다 하며, 촉한의 유비(劉備)가 여기서 죽었음.

여기서 호북성 강릉(江陵, 형주荊州)까지 1,300리요 골짜기 길이가 700리라고 함.

백제(白帝)는 ‘가을을 맡은 서쪽 신(神)’의 뜻이 있음.

 

4) 모침(暮砧) : 저녁의 다듬이질. ‘저녁에 옷을 다듬이질하느라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를 뜻함. 砧은 ‘다듬잇돌’임.

 

5) 봉래궁(蓬萊宮) :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에 있는 신선 궁궐.

여기서는 ‘한(漢) 나라 영안궁(永安宮)’임.

‘궁궐(宮闕)’은 ‘고궐(高闕)’로 보기도 함.

 

6) 남산(南山) : 한당(漢唐)의 서울 장안(長安) 남쪽의 산. 종남산.

 

7) 승로금경(承露金莖) : 승로반(承露盤)과 금경 기둥.

승로반은 한무제(漢武帝)가 건장궁에 설치한 구리 쟁반으로 넓이가 7아름이고, 이슬을 받아 내리는 기둥이 금경인데, 길이 20장(丈)으로 위에 선인장을 두어 이슬을 받아서는 옥가루를 타서 장수의 약으로 마셨다 함.

 

8) 요지(瑤池) : 신선이 사는 곳.

곤륜산(崑崙山)에 있으며 주(周)의 목왕(穆王)이 팔준마를 타고 가서 서왕모(西王母)를 만나 노래로 화답했다고 함.

 

9) 왕모(王母) : 서왕모. 곤륜산의 선녀.

 

10) 함관(函關) : 함곡관. 산동(山東)에서 6국으로 통하던 관문으로 낙양 서쪽에 있는데, 험하기로 유명하여 ‘천하제일험관(天下第一險關)’이라 함.

자기관(紫氣關).

 

11) 조반(朝班) : 조회 반열(朝會 班列).

조정의 의식이나 회합에서 벼슬아치가 서는 차례.

조열(朝列).

 

 

 

* 766년에 지은 〈추흥(秋興)〉 8수는,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자, 두보가 자신의 쇠약해진 몸을 돌아보고, 장안에서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인생의 적막함을 침울한 어조로 노래한 연작시로, 두보의 칠언율시 가운데서도 미학적으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어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제1,2,3수는 ‘추흥 삼수(秋興 三首)’로 ‘두시언해(杜詩諺解)’에는 ‘추흥 오수(秋興 五首)’의 뒤에 실렸으나, 사실상 추흥 여덟 수의 발단과 같은 작품이다.

 

제1수 1연[1, 2구]은 기(起)로 가을이 되어 만물이 시드는 소삼한 기운을 읊었고,

2연[3, 4구]은 승(承)으로 사경(寫景)인데 무협 장강의 파도는 하늘로 치솟고 산에 낀 구름은 평지에까지 깔려 사방이 어둡다는 것이다.

3연[5, 6구]은 전(轉)으로 작년에 이어 국화꽃 핀 것을 또 봄으로 해서 내용이 전환되어, 고향 가려던 일이 어긋나 언제 가게 될는지 기약 없어 이 국화가 앞날의 눈물의 씨앗이 되지 않으려나 불안하며, 짐을 풀지 못하고 타고 갈 배 한 척을 강가에 매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타일루(他日淚)’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눈물’이라는 풀이도 있다.

마지막 연[7, 8구]은 결(結)로 겨울 준비를 하느라 백성들은 바빠 다듬잇방망이 소리가 백제성에 드높으니, 언제 고향으로 가게 될는지 방망이 소리가 가슴을 때린다.

더구나 ‘백제(白帝)’는 가을 신이니 마음만 조급하다.

 

제2수는 기주의 저녁과 밤경치를 읊고 절도사 친구 엄무(嚴武), 신선 길을 더듬은 한(漢)의 장건(張騫)을 떠올리노라니 시간은 흘러 둥근 달은 어느덧 중천으로 와서 강가의 갈대꽃을 비춘다 했다.

 

이것이 아침의 전조가 되어 제3수에서는 기주와 무협의 아침 풍경에 자기의 감회를 폈으니, “나는 남들보다 글 솜씨가 뒤지지 않건만 동접(同接) 친구들은 성공했다 '동학소년다불천 오릉의마자경비'(同學少年多不賤 五陵衣馬自輕肥)”라고 맺었다.

 

제1수는 7언율시로서, 압운은 林, 森, 陰, 心, 砧 자로 평성 ‘침(侵)’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仄平平平仄平, 平平平仄仄平平, 平平平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으로 이사부동이륙대, 반법, 점법 등이 모두 잘 이루어졌다.

이 ‘추흥 5수(秋興 五首 : 제4,5,6,7,8수)’도 대종대력(代宗大曆) 원년(766) 지은이가 55세 때 기주(夔州, 현재 중경시 무산현重慶市 巫山縣)에 머물 때의 작품으로, 앞에 제시한 ‘추흥 3수(秋興 三首)’와 더불어 모두 8수가 같은 제목이다.

 

이 작품들은 그의 가난과 시름과 신병과 노쇠와 망향 그리고 충성 등이 점철되어 있어서, 북주(北周)의 유신(庾信, 자 자안子安)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비기는 명작이다.

 

제4수는 장안의 모습을 남에게서 들은 형식으로 써서 안록산(安祿山)이나 토번족(吐蕃族)에게 점령당하고 정치가들은 아무 계책 없이 갈팡질팡하는 등 박장기판 같으며, 귀족의 저택은 새 임자로 바뀌고 문물(文物)이 전과 달라졌는데도 자기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된다고 했다.

 

제5수는 태평했던 지난날의 조정을 묘사하면서 관직에 있을 때 임금을 뵙던 추억을 더듬었다.

 

제6수에서는 곡강(曲江)의 놀이를 회상하며 장안의 지금 형편을 안타까워했고,

제7수에서는 곤명지(昆明池)를 들어 한무제(漢武帝)의 위업(偉業)을 현종 임금과 비기었다.

마지막 수(제8수)는 미피호(美陂湖)의 뱃놀이를 회고하며 지난 날 자기의 글솜씨는 강산을 눌렀는데 지금 백발로 고개 숙인 처지를 슬퍼했다.

 

제5수는 7언율시(7言律詩)로서, 압운은 山, 間, 關, 顔, 班 자로 평성 ‘산(刪)’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平仄仄平平, 平仄平平平仄平, 平仄平平仄仄仄, 平平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平仄, 仄仄仄平仄仄平, 仄仄平平平仄仄. 仄平平仄仄平平’으로 이사부동이륙대(二四不同二六對)와 반법, 점법(反法, 粘法) 등이 모두 이루어졌다.

제3구의 王 자는 ‘임금’의 뜻이면 평운 ‘양(陽)’이요, ‘임금노릇하다’의 뜻이면 거성 ‘양(漾)’ 측운인데 여기서는 ‘漾’ 운이 합당할 것이다.

                                                                             (한시작가작품사전, 국학자료원 참조)

차이코프스키 - 가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