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와 음악 동영상

두고 온 슬픔

높은바위 2022. 12. 30. 18:37

 

                두고 온 슬픔

눈이 질펀한 명동성당 앞의 동냥노래 부르는 맹인부부
무작정 상경하여 5년동안 벌은 오백만원을 날치기 당해 애태우는 구로공단의 여공
건장한 중년 사장님이 휘두른 골프채에 머리를 다친 워커힐의 젊은 캐디아가씨
무전취식으로 종로서에 고발된 휴가나온 전방의 일등병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청계천의 삼류술집앞의 깡마른 기도
을지로 국립의료원 앞의 술취한 지겟꾼의 토사물과 그 옆에 쪼그려앉아 울며 깨우고 있는 어린 아들
남대문시장 장사치 여편네의 억센 팔에 거머잡힌 머리채를 뺄려다 승강대에서 떨어지는 어린 시내버스안내양
비내리는 영동교 난간을 들이받은 병든 아내와 배고파 우는 아이를 집에 두고 온 보조 한시택시운전사

열아홉번의 교도소 생활에 스무번째 절도로 일부러 끌려온 일흔세살의 약수동노인
비오는 종로 지하도 입구의 젖은 멍석위에 엎드려 있는 걸인母子
연봇돈 많이 내야 천당행 직행열차를 탈 수 있다고 떠드는 봉천동 전도사의 침튀기는 입술
마지막 기차를 놓친 승객에게 팔을 끄는 청량리역전의 어린 창녀의 담배 물은 모습

신당동 무허가 칸막이 이발소에서 4년간 안마해 온 부황낀 아가씨의 얼굴
중곡동 정신병원 환자들의 상대 배역이 되어 무대위에 올라가는 가난한 연극배우지망생의 벌거벗은 몸통
오장동의 여자 앉은뱅이 카세트 장삿군
신정연휴에 고스톱으로 전세금마저 날리고 자살한 미아리 가장의 유서

신림동의 여관을 돌아다니며 구두를 수거해가는 찍새의 때묻은 손등
술집마다 드나들면서 술꾼들에게 한 잔의 술을 구걸하는 퇴계로의 껌팔이 노파
소주 세병과 구운 오징어 네마리를 가슴에 품고 들어가다 몸수색 당해 끌려가는 동대문야구장 쐬주팔이의 뒷덜미
회사 동료들 노름판에서 보너스까지 날리고 뒷전에서 졸다가 새벽에 찾아 온 마누라에게 딸려가는 신사동 짠돌이의 떨어진 구두 뒷축

월급의 2/3가 사채놀이와 곗돈으로 들어간다며 거의 매일 담배를 소지않고 동료들에게 얻어 피우는 용두동 파렴치한의 내미는 두 손가락
영등포 동시상영 영화관을 조조할인 때 들어가서는 오후 늦게야 눈비비며 나오는 갓 제대한 새파란 젊은이 뱃속의 쪼로록거리는 소리
여의도 KBS별관 공개홀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기다려서서 방청권을 얻어내는 40대 실업자 아저씨의 쾡한 눈
밤새도록 당구장에서 라인볼과 제대당구로 일당을 보태주는 200점짜리 이문동 막노동꾼의 더부룩한 턱수염

미싱보조 3년,가정부 4년 경력에 매일 명동을 돌고가야 잠이 온다는 골빈 22살 아가씨의 짙은 눈썹화장과 올 나간 스타킹
젖먹이를 두고 가출한 여자를 증오하며 인조젖꼭지를 물고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는 장충동 남자의 축축한 눈 언저리
마지막경주가 끝난 후 마권 환전하고 나오는 사람마다 붙들고 차비 좀 하고 손 내미는 과천경마장 5층의 누리끼리한 사내의 두툼한 안경알
성깔때문에 이혼한 뒤 힘들다고 일은 못하고 채팅방 꽃제비로 하루하루 남자 바꿔가며 생활하는 목동 40세 아줌마의 pc방 귀빈석

출발직전의 시외직행버스에 올라와 추첨권 돌린후 몇번 당첨되었다고 만원만 내고 15만원짜리 물건을 가져가라고 강매하는 상봉동 떠돌이 장사치 2인조의 짝짝이양말
미싱사 생활 5년에 의류 밴처가 되겠다며 빚내서 한칸매장 임대받아 옷장사하는 동대문 모방디자이너아가씨의 명함
관철동 공구가게앞 내놓은 배달그릇을 펼쳐서 남은 국물과 밑반찬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노숙자의 때낀 손가락 
딸네집에 찾아왔다 모두 이사가서 다시 고향가려는 데 기차삯이 딱 1700원 모자란다고 착한 사람들만 붙잡고 기차삯 울궈내는 서울역전 젊은 할머니의 기름진 얼굴

어제를 달려온 이 낯익은 슬픔이 색을 바꾸는 날 
나,
저 하늘에 흩어지는 별꽃처럼 춤을 추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