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노발리스

높은바위 2015. 2. 17. 10:59

 

 

     밤의 찬가

 

생명이 있고,

감성이 있는 어떤 자가,

그를 에워싼 넓은 공간의

놀라운 현상들 중에 무엇보다도

광선과

빛깔들,

낮 동안의

온화한 편재를 지닌

가장 즐거운 빛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빛의 푸른 대양에서 헤엄치는

쉴 줄 모르는 성좌들의

거대한 세계는 빛을

가장 내면의 영혼으로 호홉하며,

빛나는 돌도

조용한 식물도

삶의 다양한

언제나 움직이는 힘과 같이

동물들의 힘도

빛을 호흡한다.

다채로운 구름들과

그리고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려 깊은 시선과

경쾌한 발걸음

그리고 음악적인 입을 가진

찬연한 이방인도 빛을 숨쉰다.

현세의 자연의

임금님과 같이

빛은 모든 힘을

무수한 변천으로 불러내며,

빛의 현존만이

현세의 경이로운 찬란함을

계시한다.

거룩하고 말할 수 없고,

신비에 가득 찬 밤을 향해

나는 아래쪽으로 몸을 돌린다.

깊은 묘혈 속에 침몰된 듯이

세계는 저 멀리 놓여 있다.

세계의 위치는 얼마나 황폐하며 쓸쓸한가!

깊은 애수가

심금을 울린다.

회상의 머나먼

청춘의 소망들,

소년시절의 꿈들,

기나긴 인생의

짧은 기쁨들,

그리고 하염없는 희망들이

회색의 옷을 입고,

일몰 이후의

저녁 안개처럼

다가온다.

다채로운 향락과 함께

세계는 저 멀리 놓여 있다.

다른 공간에서

빛은

즐거운 천막을 쳤다.

빛은 이제 그의 성실한 아이들에게

그의 정원으로

그의 찬란한 집으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서늘하게 활기를 주며,

이렇게 예감이 차서

가슴에서 솟아나

애수의 포근한 공기를

마시는 것일까?

어두운 밤이여

그대도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고 힘차게

나의 영혼을 동요시키는

무엇을 그대는

그대의 외투 밑에 지니고 있는가?

그대는 다만 무섭게만 보이는구나.

고귀한 향내는

그대의 손과

양귀비 다발에서 방울져 떨어진다.

감미로운 도취 속에서 그대는

정의의 무거운 날개를 펴고

우리들에게 어둡고 형언할 수 없으며,

그대 자신과도 같이 정다운

기쁨을 선사하라.

우리들로 하여금 천국을 예감케 하는

그 기쁨을.

다채로운 사물들을 지닌

빛이 이제 나에게는

얼마나 빈약하고 치졸하게 생각되며,

작별이

얼마나 즐겁고 축복을 주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밤이 그대로부터

봉사하는 자들을 빼앗아간

바로 그 때문에

빛이여, 그대는

드넓은 공간 속에

빛나는 공들을

씨뿌렸으니,

그대가 멀리 떠난 시대에

그대의 회귀를

그대의 만능을 창도하기 위함이라.

저 머나먼 곳의

빛나는 별들보다도

밤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눈뜨게 한

그 무한한 눈이 더 거룩하게 생각된다.

내심의 눈은

저 무수한 성군의

가장 창백한 것들보다

더 멀리 본다.

빛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내심의 눈은

사랑하는 심정의

깊은 곳을 투시하며

형언할 수 없는 열락으로

고귀한 공간을 채우는 것을 꿰뚫어 본다.

거룩한 세계의

고귀한 예고자며

복된 사랑의

양육자인

세계의 여왕인 밤이여 찬송 받으라.

연인이여, 그대가 온다.

밤은 왔다.

나의 영혼은 광희한다.

현세의 낮은 지나고,

그대는 또다시 나의 것.

나는 그대의 깊고 검은 눈을 본다.

그리고 사랑과 행복 이외의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우리는 밤의 제단에 무릎을 꿇는다.

포근한 침상 위에

껍질은 벗겨지고,

뜨거운 포옹으로 불이 붙은 채,

감미로운 희생의

밝은 불길은 솟아오른다.

 

 

 

* 한낮의 빛보다는, 한밤의 어두움을 노래했고, 생의 현실보다는 죽음의 몽한을 사랑하여 그것을 노래한 독일 낭만파 초기의 대표적 시인 노발리스(Novalis : 1772-1801)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Leopold, Freiherr von Hardenberg)라 한다.

노발리스는 예나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수많은 낭만주의자들, 그 중에서도 피히테, 실레겔 형제, 밀러 등과 깊이 사귀게 되었다.

바이센페르스에서 그는 13세 소녀 조피 폰 퀀을 알게 되어 약혼했으나, 2년 뒤에 그녀는 죽고 만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게 된 시인의 괴로움과 죽음의 세계까지라도 그녀를 찾아가리라는 결의의 표현으로 시집 <밤의 찬가>(1800년)를 썼다.

노발리스에게 있어서 죽은 조피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스스로 빛의 나라를 떠나서 어두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며,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있는 천국으로 가려 하는 경건한 심정이 된다.

그러나 그의 최대의 작품은 중세기의 기사 시인을 소재로 한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으로서, 1799년에 착수하여 <기대(期待)>라고 타이틀을 붙인 전편을 완성하였는데 <실현(實現)>이라고 하는 후편은 처음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주인공이 꿈에 '푸른 꽃'을 보고서 이 꽃을 찾아 방황하는 점에서 이 책의 별명을 <푸른 꽃>이라고 부른다.

또 이 꽃은 무한을 동경하는 낭만파의 본질의 상징도 되었다.

원래 그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시사에 의하여 동종류의 발전소설(發展小設)로서의 작품을 쓴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은 괴테의 세계관과 노발리스의 그것과의 상이점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자주 비교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