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하느님과 하나님

높은바위 2025. 5. 15. 06:50

 

"환웅이 지상 세계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자 하느님이 환웅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성경의 레위기 22장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감사 제물을 드리는 절기를 지키라는 계명이 있다."

 

기독교계 특히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명(神名)을 '하나님'이라 칭하고,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원칙적으로 '하느님'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라고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 학계에서는 '하느님'이라 칭하고 사용한다.

원래 '하느님' 또는 '하나님'은 그 어원이 '하ᄂᆞᆯ(天)'에 존칭의 접미사 '-님'이 연결된 것이다.

'하느님'은 '하ᄂᆞᆯ + -님'이 'ㄴ' 앞에서 받침의 'ㄹ'이 탈락하여, '하느님'이 되었다.

'딸+님'이 '따님'이 되었고, '아들+님'이 '아드님'이 된 예이다.

실제로 이 '하ᄂᆞ님'은 1895년에 '조선예수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에서 간행한 '진리편독삼자경(眞理便讀三字經)'에서도 '하ᄂᆞ님'으로 쓰고 있고, 그 이전의 성경에서도 '하ᄂᆞ님'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ᄂᆞ'자가 '아'로 동일시되면서 '하나님'으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ᄂᆞ'자가 '아'로 변화한 것은 제1음절에서였다.

제2음절 이후에는 주로 '으'로 변화를 한다.

그래서 '하ᄂᆞᆯ'도 '하늘'로 변화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분이란 뜻이면 '하느님'이 쓰일 것이다.

 

천주실의는 마테오 리치가 그동안 쌓아온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중국인이 원래는 기독교가 말하는 신을 믿었다는 점, 불교나 도교가 기독교보다 수준이 낮다는 논리, 기독교가 유교의 가르침과 큰 차이가 없다는 등의 논설을 중국 지식인과 대화체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유교와 친화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시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상당히 읽히게 되었고, 이후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 지역에 기독교가 퍼질 때 성서보다 먼저 들어가는 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조선에서도 학자들을 필두로 천주실의를 통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천주(天主)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말 그대로 '하늘의 신'을 뜻하는 하늘님이라는 표현 자체는 기독교의 전래 이전에도 한국에 있던 표현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시인 '노계가'에서도 확인되는 나름 유서 깊은 표현이다.

 

'ㄹ'과 'ㄴ'이 붙는 경우, 해 보면 알겠지만 발음하기 대단히 곤란해진다.

결국 한쪽 자음이 사라지거나, 다른 한쪽 자음이 바뀌어야 하는데, 전자가 ㄹ 탈락, 후자가 ㄴ의 유음(ㄹ)화이다.

즉, '하늘 + -님'을 [하느님]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전자, [하늘림]으로 발음하는 경우는 후자이다.

 

현대 국어였다면 후자로 갔겠지만, '천주'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던 시기의 국어에서는 ㄹ 탈락이 더 두드러졌다.

'아드님(아들 + -님), 따님(딸 + -님)'과 같은 단어는 모두 이 시기에 굳어져 쓰이는 단어이며, '달님[달림]'은 이 시기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단어이기에 유음화가 적용되었다.

즉, '천주'의 번역어가 다소 늦게 한국어에 전래되었다면 '하늘님[하늘림]'으로 정해졌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분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하나'를 뜻하는 단어는 'ᄒᆞ나'였고, '하나'로 변화했다.

따라서 '한 분밖에 안 계신 분'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쓴다는 말도 잘못된 말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후대에 만들어진 단어이고, '하느님'은 이전에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단어이다.

왜냐하면 'ㄴ'앞에서 'ㄹ'이 탈락하는 현상이 20세기에 와서는 없어졌기 때문에, 'ㄹ'이 'ㄴ' 앞에서 탈락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달(月)+님'은 '달님'으로, '별(星)+님'으로 되지, '다님', '벼님'으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은 '별님', '달님'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단어가 틀림없다.

후대의 어느 종교에서 '하늘님'이라고 붙인 것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한울님'이냐 또는 '한얼님'이냐 하는 논쟁은 20세기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