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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억의 균열

높은바위 2025. 5. 14. 06:41

 

흐르는 곡은,

Denean -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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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억의 균열

           ― 제련(製鍊)을 하며

 

                                          高巖

 

급랭된 쇳덩이처럼

기억은 차갑게 갈라진다.

용광로(鎔鑛爐)의 밤, 불꽃들이 비산하고

한 문장이 금이 가듯

시간도 금이 간다.

 

나프타(Naphtha)의 끓는점을 낮추는 과정 속에서

나는 자신을 분해했다.

중질에서 경질로,

진한 마음은 얇은 휘발로 흩어지고

사라지기 쉬운 것들만 남았다.

 

필름이 끊겼다.

빛을 삼킨 어둠 속에서

누구도 끝을 말하지 않았다.

기억과 욕망은

투영되지 못한 채 스크린 뒤에 남았다.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외운 것들은 많았지만

사랑 하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정리는 했으나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고구려, 발해, 연해주 —

지도 위에선 지워졌지만

내 마음 안에선

여전히 형제였고,

여전히 우리 땅이었다.

 

감동이 아닌 공식으로,

쾌감이 아닌 체계로,

나는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나

허구가 더 따뜻했다.

 

무엇이 진짜였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물처럼 엉킨 감정과

모조품 같은 진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기억은 존재의 증거인가,

아니면 단지, 의미의 잔상인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지금,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묻는다.

 

유예된 죽음의 흔적으로,

삶은 반복적 현재에 머물렀다.

몸은 기억을 흔들며

잊히지 않기 위해

땀비 쏟은 방열복(防熱服)을 벗고 있다.

 

 

* 제련(製鍊) :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서 함유된 금속을 뽑아냄.

* 나프타(Naphtha) : 석유, 콜타르, 함유 셰일 등을 증류하여 얻는 탄화수소 혼합물. 750~850℃의 온도에서 열분해 하여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따위를 만드는 공정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