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남북정상 회담'과 '금융권의 정상화'의 장단음

높은바위 2022. 9. 25. 15:53

 

우리말에는 한자어의 영향을 받아서 발음을 길게 하거나 짧게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을 '장단음 원칙' 혹은 다른 말로 '자고저'라고도 합니다.

 

점점 신속한 것을 원하는 시대인지 오늘날 말의 경향을 보면 대체로 말이 빨라지면서 정작 길게 ㅁ말해야 하는 단어를 짧게 발음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엄연히 '자고저, 장단음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발음상 길게 말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게 길게 해야 하고, 짧게 말해야 하는 것은 정확하게 짧게 해야 바람직합니다.

 

그렇다고, 장음의 경우에 길게 말한다고 하여 너무 길게 해서는 곤란하고, 다소 긴장되는 듯이 중장음 정도로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요즘 뉴스에서 '남북정상회담''금융권의 정상화'란 말을 참 많이 하는데,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인 만큼 그 '자고저'를 분명하게 구분하면 좋겠습니다.

 

* 남북정(.)상 회담 / 남북정(:)상 회담

* 금융권의 정(.)상화 / 금융권의 정(:)상화

 

각각 어떤 것이 옳겠습니까?

우선 '남북정(.)상 회담'으로 '정'을 짧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융권의 정(:)상화''정'의 발음은 장음입니다.

 

장단음은 중세 한국어에서 성조가 사라지며 상성(낮았다가 높아지는 소리)이 장음으로 바뀐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렇게 성조가 사라지는 과도기로 장음이 나타났기 때문에, 장단음의 구별 또한 미약할 수밖에 없었고, 표기 시스템도 갖추어지지 못했으며, 발음 규칙도 통일되게 존재하지 못했다.

* 첫음절 위주로만 나타나는 애매한 특성


장단음이 첫음절에서만 나타나고 그다음 음절부터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즉, 먹는 밤(栗)은 첫 음절에서는 [밤ː] 이지만, 햇밤과 같이 다른 형태소에 후속하는 합성어로 나타날 경우 장음이 사라지고 그냥 [햇밤](→[핻빰])으로 부르게 된다.


하늘에 내리는 눈(雪)도 첫 음절에서는 [눈ː]이지만 싸락눈, 진눈깨비 등으로 나올 경우 장음이 사라진다.

이는 애초부터 규칙의 통일성이 없어 장단음 시스템 자체가 매우 약했다는 것이다.
다만, 항상 둘째 음절 이상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표준 발음법 6항에 따르면 합성어의 경우 재삼재사([재ː삼재ː사])나 반신반의([반ː신바ː늬/반ː신바ː니])와 같이 예외적으로 긴소리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 교육 상의 어려움


현재의 장단음 체제는 이렇다 할 기준이 없고, 심지어는 사전마다 다른 경우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장음만을 특별히 표기하는 표기법도 문자의 앞인지, 뒤인지, 콜론(:)인지 대시(-)인지 정립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제도적인 교육이 불가능한 것이다.


40년 전인 1977년의 교육 강화 시도가 실패하면서 장단음은 제도 교육상의 생명력을 잃었다.

단어 차원에서의 장음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보상적 장음화(compensatory lengthening)라는 언어 보편적인 현상은 여전히 나타난다.

어떤 말이 준말로 될 적에 그 줄어든 부분이 장음으로 발음되는 현상으로, '되어'가 줄어들어 '돼'가 될 때 발음이 2음절 분량으로 길어지는 것이 그 예이다.
(예: 그렇게 되어 결국 ~/그렇게 돼 결국 ~) 표준어로 인정된 준말(예: 뱀, 똬리, 외다 등)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동남 방언에서도 나타나는데, '가져가'의 동남 방언인 '가가'가 [가~가]로 길게 나타난다.